오리가 먹이를 삼킨 뒤 무언가를 내놓자, 그것을 은쟁반에 받아 관객에게 돌렸다. 훗날 마술사 로베르 우댕이 회고록에 적은 기계 오리의 시범이다. 보통 오리의 배설물이라면 피할 일이지만, 이것은 기계가 소화를 해냈다는 증거로 제시됐다. 구경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노래나 곡예가 아니라 똥이었다.
이 오리를 만든 사람은 18세기 프랑스의 발명가 자크 드 보캉송이었다. 그의 공연에는 사람 모양의 기계 연주자들도 있었다. 플루트를 부는 인형은 단지 악기를 든 채 몸속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장치가 아니었다. 공기를 보내고 입술과 손가락을 움직여 실제로 악기에서 소리가 나게 했다. 그런 발명가가 이번에는 동물이 먹고 배설하는 과정을 기계로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먹이를 넣고 뒤로 꺼내는 일만 했다면 인상은 달랐을 것이다. 오리는 목을 뻗어 곡물을 받아먹고, 그것을 삼키는 듯 목을 움직였다. 물에 부리를 담그고 날개를 움직였으며 몸을 세우기도 했다. 보캉송이 소개한 동작들은 우리가 살아 있는 오리를 알아보는 작은 버릇들이었다. 기계가 한 번 움직였다는 사실보다 여러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이 중요했다.
날개에도 공이 들어갔다. 당시 설명은 뼈에 해당하는 부분과 관절의 움직임까지 자세히 짚었다. 몸 안의 장치를 볼 수 있게 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완성된 오리의 겉모습만 보고 감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동작이 어떤 기계로 만들어지는지 살펴보라는 취지였다. 톱니와 연결 장치가 드러나 있다고 해서 구경거리가 덜 신기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대담한 설명은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먹이가 안에서 풀어지고 변한 뒤 관을 따라 나간다는 것이었다. 다만 보캉송도 이것을 살아 있는 동물과 완전히 같은 소화라고 하지는 않았다. 먹이로 피와 영양분을 만들어 생명을 유지한다는 주장은 아니었다. 삼키고, 먹이를 변화시키고, 달라진 상태로 내보내는 세 과정을 흉내 낸다고 선을 그었다. 그 정도만 해내도 작은 기계 몸 안에서 할 일은 상당했다.
한 세기쯤 뒤, 이 설명을 믿었던 사람이 오리의 속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로베르 우댕 역시 자동인형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1844년 파리에서 보캉송의 오리로 전시된 장치를 보았고, 이후 날개가 고장 나자 수리를 맡게 됐다. 감탄하며 바라보던 발명품이 작업대 위로 온 것이다.
우댕이 설명한 속사정은 간단했다. 오리가 받아먹은 물과 씨앗은 부리 아래의 관을 타고 별도의 상자로 들어갔다. 그 상자는 며칠에 한 번씩 비웠다. 반대편으로 나오는 것은 그 먹이가 아니었다. 초록색으로 물들인 빵 부스러기를 미리 준비해뒀다가 펌프로 밀어냈다. 들어가는 먹이와 나오는 물질 사이에, 관객이 기대한 소화 과정은 없었다.
그의 기록대로라면 은쟁반에 오른 것은 기계가 만들어낸 배설물이 아니라 미리 만든 소품이었다. 먹이를 삼키는 장면을 먼저 보고 결과물을 나중에 받으면, 관객이 둘 사이를 이어 생각하기 쉬웠다. 오리가 목을 움직이고 물을 마시는 정교한 동작은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과정까지 믿게 해주는 앞부분이 됐다.
우댕의 설명은 제작 당시를 지켜본 기록이 아니라 훨씬 뒤에 수리한 장치에 관한 회고다. 그래도 그가 느꼈다는 놀라움은 분명히 남아 있다. 그는 보캉송의 기계 기술에 감탄한 데 이어, 마술사도 자랑스러워할 속임수를 썼다고 적었다. 날개를 고치러 열어본 오리 안에서 발견한 것은 더 정교한 위장이 아니었다. 먹이는 따로 받아두고, 관객에게 보여줄 결과물은 따로 내보내는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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