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에게는 주머니에서 꺼내 쓰는 작은 상자가 있었다. 안에 든 것은 코에 바르는 끈끈한 연고 같은 물질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금속으로 만든 인공 코가 붙어 있었다. 학생 때 검으로 싸우다 잃은 코 일부를 대신하는 물건이었다.

다친 곳은 손가락으로 가리거나 옷으로 감출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브라헤는 얼굴 한가운데 생긴 손상을 인공 코로 가렸다. 나중에 같은 곳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작은 상자를 지니고 다니며 코에 그 물질을 자주 발랐다. 금속 코는 초상화에 한 번 등장하고 끝난 소품이 아니라 몸에 붙이고 관리하며 쓰던 물건이었다.

사건은 1566년 독일 로스토크에서 벌어졌다. 브라헤는 그해 12월 막 스무 살이 된 덴마크 귀족 청년이었다. 유럽의 여러 대학을 옮겨 다니며 공부하던 그는 로스토크 대학에 등록했다. 훗날 왕의 후원을 받아 커다란 관측소를 세울 인물이지만, 이때는 다른 학생과 다툰 끝에 얼굴을 다친 유학생이었다.

옛 전기는 두 사람이 한 번 말다툼을 하고 바로 검을 뽑은 것으로 전하지 않는다. 브라헤의 생애를 정리한 J. L. E. 드레이어는 앞선 전기 작가 피에르 가센디의 기록을 따라, 다툼이 몇 차례 이어졌다고 썼다. 시작은 12월 10일, 한 교수의 집에서 열린 약혼 축하 모임이었다. 그 자리에 브라헤와 다른 덴마크 귀족 청년 만데루프 파르스베르가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언쟁을 벌였다. 27일의 크리스마스 모임에서도 다툼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이틀 뒤 저녁에는 검으로 맞섰다. 전기는 어둠 속에서 벌어진 싸움이었다고 적지만, 두 사람이 그날 일부러 만난 것인지 우연히 마주친 것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칼끝이 오간 뒤 브라헤는 코 일부를 잃었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기에 며칠에 걸친 다툼이 칼싸움까지 갔는지는 이 기록만으로 알 수 없다. 브라헤는 손상된 얼굴을 가릴 인공 코를 만들었고, 이후의 초상화에서도 코가 다른 부분과 어색하게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확히 어느 부분을 얼마나 잃었는지까지 그림만으로 재기는 어렵다.

인공 코는 금과 은을 섞어 만들었다고 오랫동안 전해졌다. 작은 상자를 지니고 다녔다는 일화 역시 이 전승과 함께 전해진다. 가센디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브라헤 곁에서 두 해를 보낸 빌럼 얀스존 블라우였다. 브라헤가 코에 바르던 물질의 정확한 조성은 기록에 없지만, 얼굴에 붙인 물건을 수시로 손보던 행동은 남았다.

코를 다친 뒤에도 브라헤의 관측은 이어졌다. 앞서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할 때부터 집안이 정해준 법학 공부 틈에 천문학을 파고들던 사람이었다. 지도교사가 잠든 동안 관측하고, 구할 수 있는 돈으로 천문학 책과 관측 도구를 샀다. 부상 이듬해 고향을 방문했다가 로스토크로 돌아왔을 때도 다시 별과 행성의 위치를 기록했다.

금속 코가 정확히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훨씬 뒤에 다른 종류의 측정으로 다뤄졌다. 1901년 프라하의 무덤을 열었을 때 인공 코 자체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코 주변 뼈에 초록빛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물건은 사라졌지만, 오랫동안 얼굴에 닿아 있던 금속의 흔적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10년 다시 유해를 조사한 연구진은 코 부분의 뼈에서 작은 시료를 얻었다. 분석 결과 그 초록빛 부분에서 구리와 아연이 함께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를 황동 코의 흔적으로 해석했다. 금과 은으로 만든 코라는 유명한 설명과는 다른 결과였다.

이 분석이 브라헤가 평생 썼던 모든 인공 코를 찾아낸 것은 아니다. 실제 코는 여전히 없었고, 연구진이 읽어낸 것은 뼈에 남은 흔적이었다. 그래도 스무 살의 칼싸움이 남긴 물건에 대해서는, 오래 전해진 이야기 대신 얼굴에 남은 금속이 답을 하나 보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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