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숨기려면 먼저 납작하게 만들어야 했다. 토머스 블러드는 나무망치를 들었다. 공범은 긴 홀을 챙기려 했고, 다른 한 명은 보석이 박힌 둥근 보주를 옷 속에 넣었다. 1671년 런던탑에서 벌어진 이 도둑질은 왕의 물건을 다루는 태도부터 남달랐다.

처음부터 망치를 휘두르고 들어간 것은 아니다. 블러드는 성직자 행세를 하며 보물을 보러 왔다. 당시에는 관람객이 관리인에게 돈을 내고 왕실 보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보물은 철제 창살 안에 있었지만, 그 문을 열어줄 사람과 친해질 길도 열려 있었다.

그 사람은 나이 든 관리인 탤벗 에드워즈였다. 그는 가족과 함께 보관 장소 위층에 살았다. 블러드와 아내 역할을 한 여성이 방문했을 때, 여성이 몸이 아픈 척하자 에드워즈 가족은 쉴 곳을 내줬다. 블러드는 나중에 감사의 선물을 들고 돌아왔다. 보물을 지키는 사람에게 그는 이제 처음 보는 손님이 아니었다.

왕래가 이어지자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다. 에드워즈에게는 딸이 있었고, 블러드에게는 소개하고 싶은 부유한 조카가 있다는 것이었다. 혼담은 방문할 이유를 만들었다. 가족끼리 가까워지는 듯한 과정이 사실은 보물실에 다시 들어갈 준비였다.

그해 5월, 블러드는 일행과 함께 찾아왔다. 보물을 보여달라는 부탁을 받은 에드워즈가 안으로 안내하자 손님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들은 관리인을 공격해 묶고 입을 막았다. 성직자의 옷을 입고 쌓아온 친분은 문이 열릴 때까지만 필요했다.

이제 가져갈 물건의 크기가 문제였다. 왕관은 머리에 씌우기 좋게 만들어진 물건이지 옷 속에 감추기 좋게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었다. 블러드는 망치로 왕관을 찌그러뜨렸다. 길쭉한 홀은 줄여서 가져가려 했고, 보주는 공범의 옷 안으로 들어갔다. 대관식에서는 권위를 나타내던 물건들이 이 방 안에서는 어떻게 포장해 나갈지 고민해야 하는 짐이 됐다.

탈출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에드워즈의 아들이 아버지가 공격당한 사실을 알아차렸고 추격이 시작됐다. 범인들은 총까지 쏘며 달아났지만, 블러드와 일행 일부가 붙잡혔다. 보물도 되찾았다. 친분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인 도둑질은 탑을 빠져나가는 단계에서 끝났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이상한 일은 체포 뒤에 벌어졌다. 블러드는 왕실 보물을 훔치다 붙잡힌 데다, 과거에도 납치와 반란 음모에 얽혔던 인물이었다. 이번 한 번의 잘못을 용서받으면 되는 처지가 아니었다. 수감 중 그와 가족은 건강이 나빠졌다며 탄원했고, 찰스 2세는 블러드를 따로 만났다.

1671년 8월의 사면 기록에는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반역과 살인, 중죄와 폭행을 비롯해 일정 시점 이후 저지른 여러 범죄를 폭넓게 사면하는 내용이었다. 왕은 그를 풀어줬을 뿐 아니라 아일랜드의 토지에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왕관을 가져가는 데 실패한 사람이 왕에게서 재산을 받게 된 것이다.

왜 그렇게 대했는지는 명쾌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블러드가 정치적으로 쓸모 있는 인맥과 정보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당시 일기를 쓴 존 이블린도 그가 왕에게 용서받고 총애까지 얻은 일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첩보 활동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도둑의 배짱에 왕이 감탄했다는 이야기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사건의 뒤편이 복잡했다.

블러드는 살아서 풀려났고, 보물은 다시 왕실의 물건으로 남았다. 사라진 왕관을 찾아오는 것으로 끝날 법한 사건이, 왕관을 훔친 사람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하는 문제로 바뀌었다. 망치로 찌그러진 왕관보다 더 오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왕의 처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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