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뉴욕 공립도서관 앞에는 종이봉투를 든 전신회사 심부름꾼이 나타났다. 그가 맡은 일은 전보 배달이 아니었다. 니콜라 테슬라 대신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었다. 비둘기들은 이제 이 소년을 알아보고 날아왔다.
《뉴욕타임스》가 테슬라에게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늘 새들을 돌본다고 인정했다. 한동안 직접 하던 일을 사람을 써서 이어 가고 있었다. 심부름꾼은 도서관뿐 아니라 브라이언트 공원과 성 패트릭 대성당의 새들도 챙겼다. 아픈 새가 먹이를 놓치지 않게 살피고, 겨울에는 물그릇의 얼음을 깨기도 했다. 가끔 남은 빵을 던지는 정도의 취미와는 규모가 달랐다.
테슬라의 관심은 거리에서 끝나지 않았다. 호텔 방에서도 다친 비둘기를 돌봤다. 1935년에는 호텔 뉴요커의 빈방으로 날아든 길 잃은 비둘기 소식이 신문에 실렸다. 직원에게 이야기를 들은 테슬라는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다. 이미 회복 중인 새를 한 마리 데리고 있었으니 서로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새를 살펴본 그는 아픈 것보다는 배가 고프고 지친 상태라고 판단했지만, 그대로 돌보기로 했다. 창가에는 수건을 깔고 먹이를 놓았다. 호텔 직원들은 그가 새를 챙기느라 그날 방을 나서지 않았다고 전했다. 커다란 전기 발명을 발표하던 사람이 자기 생활의 한쪽을 작은 환자들에게 내주고 있었다.
그 많은 비둘기 가운데 특별히 아꼈다는 흰 비둘기 이야기도 전해진다. 테슬라를 알았던 과학 저술가 존 오닐은 1944년 전기에서, 테슬라가 날개에 옅은 회색이 섞인 흰 암컷 한 마리에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고 썼다. 오닐이 전한 말에 따르면 테슬라는 그 새가 아플 때 며칠씩 곁을 지켰고, 함께 있는 일이 삶의 큰 기쁨이었다고 했다.
이것은 테슬라가 직접 출판한 고백이 아니라, 그와 나눈 대화를 오닐이 나중에 옮긴 이야기다. 그래서 흰 비둘기에 관한 일화에는 오닐의 이름이 함께 붙는다. 다만 새를 먹이고 돌보는 생활 자체는 당대 신문에도 여러 번 나타난다. 한 마리에 대한 강렬한 애정과 도시의 여러 무리를 챙기는 습관은 서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PBS가 소개한 기록에는 테슬라가 호텔 요리사에게 특별한 새 모이 혼합물을 준비하게 했다는 내용도 있다. 먹이를 주는 일에도 자기 방식을 찾았던 것이다. 그의 이름 옆에는 대개 모터와 전류, 거대한 실험 장치가 놓이지만, 일상에는 새 모이와 둥지, 다친 날개를 돌보는 시간이 함께 있었다.
직접 거리를 돌기 힘들어졌을 때도 그 일은 멈추지 않았다. 맡을 사람을 구하고 비용을 지불했다. 1937년 도서관 앞에서 비둘기들이 기다린 것은 유명한 발명가의 얼굴만이 아니었다. 그를 대신해 늘 먹이를 가져오는 소년의 봉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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