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의 도서관에는 책만 남긴 작가가 아닌, 새까지 남긴 작가의 흔적이 있다. 찰스 디킨스가 기르던 큰까마귀 그립의 박제다. 디킨스가 죽은 뒤 여러 소장자를 거쳐 도서관에 들어온 이 새는, 살아 있을 때 이미 소설 속에 자리를 얻었다.

디킨스의 《바너비 러지》에는 말을 하는 큰까마귀 그립이 나온다. 주인공 바너비의 곁을 지키며 엉뚱한 말을 던지는 새다. 디킨스는 책의 서문에서 이 캐릭터가 자신이 서로 다른 시기에 기른 두 까마귀를 합쳐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 하나를 그대로 옮겼다기보다, 함께 살며 본 성격과 행동을 모아 소설에 넣은 셈이다.

첫 번째 새에 관한 디킨스의 묘사는 반려동물 소개라기보다 작은 인물전처럼 읽힌다. 마구간에서 지냈고 말 등에 올라가 잠들곤 했으며, 커다란 개의 밥까지 가져갔다고 했다. 디킨스는 이를 까마귀의 뛰어난 지성 덕분인 양 적었다. 동물에게 사람의 직함과 자부심을 붙이는 장난기가 이미 서문부터 드러난다.

그 생활은 새가 페인트를 먹으면서 끝났다. 당시 페인트에는 납이 들어 있었고, 그립은 죽었다. 디킨스는 새를 박제로 만들어 곁에 두었다. 책 속에서 계속 떠드는 까마귀와 달리 실제 새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주인은 눈앞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지 않았다.

그 뒤에는 또 다른 까마귀가 왔다. 디킨스의 서문에 따르면 이 새는 전임자가 정원에 묻어 둔 치즈와 동전을 파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디킨스는 마치 유산을 정리하는 후계자처럼 묘사했다. 마구간의 소리를 배워 창문 밖에서 말에게 명령하듯 떠들었다는 대목도 있다. 아무 말이나 하는 새가 아니라 집안의 소음을 제 방식으로 익힌 동물이었다.

한번은 집에서 꽤 떨어진 거리에서 군중을 거느린 채 돌아다니는 새를 발견했다고도 썼다. 데려오려 하자 펌프 뒤에서 버티다가 여러 사람의 손에 붙잡혔다는 이야기다. 이 장면을 전하는 사람은 냉정한 동물 관찰자가 아니라 우스운 인물을 잘 그리는 소설가다. 디킨스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새까지 주인공처럼 대했다.

소설 속 그립은 다른 작가의 눈에도 들어왔다. 에드거 앨런 포는 《바너비 러지》를 평하며 까마귀를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었겠다고 지적했다. 훗날 포의 시 《큰까마귀》와 그립의 관계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다. 영감의 연결을 정확히 어디까지 단정할지는 별개로, 포가 디킨스의 새 캐릭터에 주목했다는 사실은 서평에 남아 있다.

박제 그립은 디킨스 사후 경매에 나왔고, 수집가 리처드 김블을 거쳐 1971년 필라델피아 프리 라이브러리에 기증됐다. 주인의 집에서 마구간과 정원을 돌아다니던 새가 작가의 유품이 됐다. 그 옆에서 읽을 만한 것은 이름표만이 아니다. 디킨스가 남긴 글을 펼치면, 까마귀가 왜 집안에서 조용히 지나갈 수 없는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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