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앞에 배의 모습이 나타났다. 새가 화면 속 배를 쪼면 먹이가 나왔다. 배가 옆으로 움직이면 비둘기도 부리를 옮겼다. 심리학자 B. F. 스키너가 이 행동에서 찾은 것은 묘기 이상의 가능성이었다. 화면을 쪼는 위치로 무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비둘기가 목표까지 길을 안내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진행된 ‘프로젝트 피전’은 비둘기를 밖으로 날려 보내는 계획이 아니었다. 새가 들어갈 자리는 유도 무기의 앞부분, 좁은 칸 안이었다. 앞을 보는 렌즈가 목표의 모습을 안쪽 화면에 비추면 비둘기는 그것을 계속 쪼도록 훈련받았다. 날아가는 일은 무기가 맡고, 어디를 향할지 알려주는 일은 새가 맡는 셈이었다.

군대에서 비둘기를 쓰는 것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통신에 이용한 전서구는 전쟁터에서 이미 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편지를 달아 돌려보내는 일과 폭탄의 방향을 맡기는 일은 달랐다. 스키너는 비둘기가 먹이를 얻으려고 반복하는 행동을, 필요한 순간에도 꾸준히 나오게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화면 속 특정한 목표를 쪼는 행동부터 가르쳤다.

이 연구를 도운 회사도 뜻밖이었다. 식품회사 제너럴 밀스가 기술 지원에 나섰다. 연구는 제안서에 머무르지 않았고, 1943년에는 미국 정부의 계약도 따냈다. 만들어진 장치에는 비둘기 세 마리가 각자의 칸에 들어갔다. 한 마리가 잠깐 멈추거나 엉뚱한 곳을 쪼더라도 다른 두 마리의 반응을 이용하려는 구상이었다. 앞부분 안에는 조종사 대신 작은 새 세 마리가 나란히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비둘기가 화면을 잘 쪼는 것만으로 무기가 완성되지는 않았다. 새의 반응과 조종 장치가 맞물려야 했다. 스키너의 회고에 따르면 보안 때문에 받은 정보가 부족했고, 시험 결과를 실제 무기에 적용하는 문제에서도 평가자들과 의견이 갈렸다.

스키너는 심사하는 과학자들 앞에 비둘기를 데려갔다. 그의 설명에서 새는 누군가 영사기의 빛을 가리자 멈췄고, 그림이 다시 나타나자 쪼기를 재개했다. 스키너에게는 훌륭한 시연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비둘기를 직접 보고 오히려 계획을 더 황당하게 여겼다고 회고했다. 잘 훈련된 새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채택 결정을 얻지는 못했다.

전시 연구는 중단됐지만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1948년 미 해군이 다시 관심을 보이면서 ‘오르콘’이라는 이름으로 연구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비둘기가 맡은 것은 목표를 따라가는 일이었다. 다만 실험에서 가능한 일을 확인하는 것과 전투에서 쓸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구별해야 했다. 비둘기가 유도하는 이 무기는 실전에 쓰이지 않았고, 전자식 유도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후속 사업도 1953년 종료됐다.

사업이 끝난 뒤에도 새들에게 배운 일이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스키너는 남겨둔 비둘기들을 나중에 다시 시험했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여섯 해가 지나서도 훈련받았던 목표를 쪼는 반응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 일을 위한 연구를 접었지만, 비둘기에게는 화면 속 목표가 여전히 쪼아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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