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베르나르의 침실에는 침대와 관이 함께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 배우였던 그녀에게 관은 장례식 때나 꺼내는 물건이 아니었다. 창가에 놓아두고 들어가 대본을 외우기도 했다. 흰 공단을 댄 그 안에 누운 사진까지 남겼으니, 관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 거기서 잠까지 잤을까. 베르나르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그랬다고 썼다. 다만 그녀가 설명한 사정은 매일 밤 죽음을 연습하는 배우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 이야기는 아픈 여동생 레지나가 언니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당시 베르나르는 파리의 작은 집에 살고 있었다. 화재로 가구와 책, 그림 등을 잃은 뒤 옮긴 곳이었다. 침실은 큰 침대 하나가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좁았다. 몸이 아픈 동생에게 그 침대를 내주고 곁에서 밤을 보내려면 자신이 누울 자리가 필요했지만, 침대 하나를 더 들여놓을 공간은 없었다.
창가에는 이미 관이 있었다. 베르나르는 동생을 침대에 눕히고 자신은 관에 들어가 잤다고 했다. 동생도 그 물건에 익숙했으므로 두 사람에게는 별문제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밤에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언니와 아픈 동생에게는 나름대로 해결된 일이었지만, 처음 그 방을 보는 사람에게까지 평범한 풍경일 수는 없었다.
회고록에 따르면, 어느 날 손톱을 손질해주러 온 여성이 방에 들어왔다. 레지나는 언니가 아직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방문객은 베르나르가 안락의자에서 잠들었으리라 생각했다가 관 속에 누운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베르나르는 이 일 뒤로 자신이 관에서 잔다는 소문이 파리 곳곳에 퍼졌다고 적었다.
아킬 멜랑드리가 찍은 유명한 사진은 그 기이한 사생활을 누구나 볼 수 있는 배우의 초상으로 바꾸었다. 프티 팔레 미술관이 약 1880년의 사진으로 소개한 작품이다.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베르나르는 소문을 활용해 촬영을 부탁했고, 사진은 인기를 얻어 배우와 사진가 모두에게 수입을 안겼다. 관을 숨기는 대신, 그 안에 누운 자신을 보여준 셈이다.
다만 사진 한 장으로 그녀의 모든 밤을 알 수는 없다. 동생을 돌보며 관에서 잤다는 이야기와, 평생 관을 침대로 썼다는 이야기는 다르다. 애초에 그 관을 누가 마련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확실히 남아 있는 것은 관을 자신의 생활 일부로 설명한 베르나르의 글과, 카메라 앞에서 그 안에 누운 모습이다.
동생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 장례를 준비할 때 관은 또 한 번 소동을 일으켰다. 베르나르가 전한 사연은 이렇다. 시신을 옮기러 온 장례업자들이 방에서 관 두 개를 발견하자, 책임자가 영구차를 한 대 더 불렀다. 그녀는 실신한 어머니 곁에 있다가 돌아와 자기 관까지 가져가려는 것을 막았다고 했다. 추가로 온 차는 돌려보냈지만, 이번 일도 신문에 실렸다.
베르나르는 회고록에서 그 오해가 자기 잘못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도 책에는 관 속에 누운 자신의 사진을 실었다. 남들이 퍼뜨린 이야기 때문에 곤란했다는 해명과, 그 이야기를 오래 남길 사진이 한 권에 나란히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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