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을 시작하기도 전에 병원으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가슴에 총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예정대로 청중 앞에 섰다. 그리고 오늘은 평소처럼 오래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이 말을 한 사람이 그날 이어간 연설은 약 80분이었다.

1912년 10월, 루스벨트는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유세 중이었다. 이미 대통령을 지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현직 대통령과 맞서는 도전자였다. 공화당을 떠나 새 진보당 후보로 나선 그는 14일 저녁 밀워키에서 연설할 예정이었다. 호텔을 나와 차에서 군중에게 인사하던 순간, 가까이 있던 남자가 총을 쐈다.

총알이 가슴에 닿기 전 뚫고 지나간 물건이 있었다. 금속 안경집과 두껍게 접은 연설문이었다. 원고는 50쪽이나 됐다. 두 물건이 총알의 힘을 줄였지만 몸에 박히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붙잡혔고, 루스벨트는 병원 대신 연설장으로 향했다. 연단에 오르기 전 진찰도 받았으나 연설을 포기하지 않았다.

청중은 총격 소식을 모두 알고 모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루스벨트는 자신이 방금 총에 맞았다고 알린 뒤, 구멍 난 원고를 꺼내 보였다. 읽기 위해 준비한 종이가 먼저 총알을 막았고, 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됐다. 그는 이번 일로 원고에 적은 생각을 바꾸지는 않겠다고 했다.

실제로 연설은 암살 미수 이야기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루스벨트는 노동시간과 아동 노동, 이민자의 권리, 대기업의 힘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이 후보 한 사람의 목숨보다 큰 문제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총에 맞은 후보가 무대에 선 극적인 상황을, 자신이 왜 선거에 나왔는지 설명하는 데 쓴 셈이다.

다만 듣는 사람들도 상처를 잊을 수는 없었다. 남아 있는 연설 기록에는 루스벨트가 자신은 괜찮다고 거듭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긴장한 것 같다고 달래기도 했다. 그러면서 청중에게는 오늘 연설을 듣는 일에서 빠져나갈 수 없겠다는 농담까지 건넸다.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본인인데, 무대를 끝내려는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던 약속은 지키기 어려웠다. 다른 후보와 자신을 비교하는 대목을 줄이겠다고 했다가 그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고, 의사들이 다음에는 연설을 허락하지 않을 테니 지금 몇 가지만 더 말하겠다고도 했다. 총격 직후의 짧은 인사말이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해 준비해 온 정치인의 긴 연설이 계속됐다.

연설이 끝난 뒤 루스벨트는 병원으로 갔다. 엑스레이 검사로 몸속 총알의 위치를 확인했고, 총알은 제거하지 않은 채 남겨 두었다. 그는 선거가 끝나기 전 다시 유세에 나왔지만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다. 승자는 우드로 윌슨이었다.

그날 루스벨트가 약속한 정책보다 구멍 난 연설문이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실제 발언을 읽어보면 기이한 점은 단지 총에 맞고도 말을 했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몸을 걱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직 설명하지 못한 공약이 남았다고 계속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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