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미국 뉴멕시코주의 군 비행장에서 박쥐들이 깨어났다. 연구진이 기대했던 순간은 아니었다. 몸에 소이 장치를 단 채 시험을 기다리던 박쥐들은 근처 건물로 날아가 숨었다. 얼마 뒤 그 건물들에 불이 붙었다. 일본의 도시를 불태우려고 준비한 실험이 미국의 시험 시설에서 먼저 효과를 보인 것이다.

이 계획을 제안한 사람은 군인이 아니라 치과의사였다. 라이틀 애덤스는 칼즈배드 동굴에서 수많은 박쥐가 날아 나오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떠올렸다. 저 작은 동물들에게 불을 내는 장치를 운반하게 하면 어떨까. 1942년 1월, 그는 자신의 구상을 백악관에 보냈다. 황당한 편지 한 통으로 끝날 법한 제안은 대통령의 관심을 얻어 실제 연구가 됐다.

애덤스가 이용하려던 것은 박쥐의 습성이었다. 박쥐는 낮에 쉴 어두운 곳을 찾는다. 사람들이 정해준 건물로 날아가라고 훈련할 필요 없이, 처마 밑이나 지붕 안쪽으로 스스로 들어가리라는 기대였다.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의 도시에 박쥐를 풀어 여러 곳에서 불이 나게 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비행기가 실어 나르는 것은 폭탄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동물이었다.

그러자 보통 폭탄에는 없는 문제가 줄줄이 생겼다. 우선 박쥐를 충분히 구해야 했다. 연구팀은 미국 남서부의 동굴을 찾아다녔다. 운반할 때는 움직이지 않도록 차갑게 해 잠든 상태로 두었다. 하지만 공중에서 풀어줄 때까지 계속 잠들어 있으면 날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방법이, 정작 날아야 할 순간에는 장애물이 됐다.

실제로 초기 시험에서는 잠에서 충분히 깨어나지 못한 박쥐들이 추락했다. 운반 상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멀쩡히 날아간다고 끝도 아니었다. 군의 시험 기록에는 모형 장치를 단 박쥐가 멀리 사라진 경우와, 연구진이 일하던 건물로 돌아온 경우가 함께 나온다. 박쥐에게는 실험실도 몸을 숨길 수 있는 건물이었다.

칼즈배드의 화재는 바로 그 차이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다. 국립공원관리청과 미 육군의 설명에 따르면, 촬영을 위해 꺼내놓은 박쥐들이 예상보다 일찍 깨어나 날아갔다. 숨을 곳을 찾는 습성은 계획대로였지만, 그곳이 미군 시설이라는 사실은 박쥐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목표에 불을 내려다가 가까이 있는 건물의 불부터 꺼야 했다.

그렇다고 사고 직후 연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사업은 해군으로 넘어가 ‘프로젝트 엑스레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고, 해병대도 시험에 참여했다. 불을 낼 수 있다는 점은 확인됐으므로 개발을 더 해보려는 여지가 있었다. 다만 시험장에서 화재를 일으키는 일과, 전장에서 필요한 때와 장소에 무기를 보내는 일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격이 있었다.

계획은 1944년에 중단됐다. 군이 남긴 설명에는 실용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오고, 당시 개발 경위를 정리한 기록에는 실전 준비에 시간이 더 걸린다는 문제도 등장한다. 박쥐 폭탄은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다. 이 무기의 이야기에 남은 화재 현장은, 원래 불태우려던 일본 도시가 아니라 그것을 시험하던 미국의 비행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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