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7년 영국의 작은 마을에 낯선 여성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대화가 되지 않았다. 다른 언어를 아는 사람을 불러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녀가 자신을 가리키며 한 말 가운데 이름처럼 받아들여진 것은 ‘카라부’였다.

처음부터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은 것은 아니었다. 신분을 확인할 서류도, 어디서 왔는지 알아들을 만한 설명도 없었다. 글로스터셔의 앨먼즈베리에서 이 여성을 맡게 된 치안판사 새뮤얼 워럴은 떠돌이 걸인일 수 있다고 봤다. 그녀는 브리스틀로 보내졌고, 한동안 빈민을 수용하는 시설에 머물렀다.

상황을 바꾼 사람은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한 남자였다. 그는 카라부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나섰다. 그가 풀어낸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인도양의 자바수라는 섬에서 온 고귀한 신분의 여성이었다. 해적에게 납치돼 먼바다를 건넜고, 배에서 탈출해 영국 해안에 닿았다는 사연이 이어졌다. 누구인지 모르는 떠돌이에게 갑자기 고향과 신분, 극적인 여행 경로가 생겼다.

워럴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다. ‘카라부 공주’가 된 여성은 지역의 유명 인사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손님이 됐다. 조금 전까지는 어디에 보내야 할지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 대접해야 먼 나라의 왕족에게 예를 갖출 수 있을지 생각했다.

카라부는 말만 다르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음식도 가려 먹었고, 낯선 방식의 옷을 입었으며, 자신만의 종교 의식처럼 보이는 행동을 했다. 초기 기록에는 밥을 좋아하고 직접 음식을 준비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방문객은 이런 행동 하나하나에서 그녀가 먼 곳에서 왔다는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행동이 계속될수록 낯선 출신이라는 설명도 그럴듯해졌다.

이야기를 확인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이 질문하고 답을 받아 적었으며, 의사 윌킨슨은 그녀를 진짜라고 옹호했다. 언어를 다룬 책을 들춰보고 몸에 남은 흔적을 외국의 치료법과 연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질문이 많다고 확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출신지가 불분명한 말을 해석할 사람부터 믿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카라부의 초상화가 만들어지고 신문에도 얼굴이 실렸다. 더 많은 사람이 그녀를 알게 되는 일은 공주 역할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얼굴을 본 사람 가운데에는 외국의 언어와 풍습을 연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었다. 브리스틀에서 숙박업을 하던 닐 부인이었다.

닐 부인은 그 여성을 알고 있었다. 자기 집에 묵었던 메리 베이커였다. 데번 출신 구두장이의 딸이었고, 여러 집에서 하녀로 일한 적이 있었다. 자바수라는 섬을 지도에서 찾거나 낯선 말을 번역할 필요가 없었다. 같은 얼굴을 다른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무너졌다.

워럴 부인은 닐 부인의 이야기를 확인한 뒤 카라부를 추궁했고, 메리는 결국 속임수를 인정했다. 그녀가 쓰던 말은 먼 왕국의 언어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낯설게 들리도록 만들어낸 말이었다. 약 열 주 동안 집안과 방문객들이 유지해온 공주 대접은 더는 이어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워럴 부인이 메리를 곧바로 내팽개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메리가 미국 필라델피아로 떠날 수 있도록 도왔다. 공주로 소개되던 여성은 이번에는 정말 대서양을 건너게 됐다. 다만 해적에게 납치됐다는 이야기와 달리, 이번 출항은 실제로 마련된 배편이었다.

메리는 이후 영국으로 돌아왔다. 훗날 브리스틀에서 병원에 의료용 거머리를 공급하며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카라부 공주의 먼 고향을 알아내려고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댔지만, 그녀의 정체를 밝힌 데 필요한 것은 훨씬 가까운 기억이었다. 예전에 우리 집에 묵었던 사람이라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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