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고기를 얇게 썰어 샬롯 소스를 곁들였다. 앞서 나온 것은 원숭이 수프였고, 곰 구이도 식탁에 올랐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던 탐험가의 식사가 아니다. 1870년의 마지막 날, 파리의 식당 노엘 페테르에서 열린 저녁 모임의 메뉴다. 손님 스무 명이 모인 이 식탁에는 사과와 배도 있었다. 평범한 과일 사이로 동물원에서나 보던 이름들이 끼어들었다.
그해 가을부터 파리는 포위돼 있었다.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프로이센을 비롯한 독일군이 도시를 둘러쌌고, 밖에서 들어오던 먹을거리가 끊겼다. 파리 안에 사람이 줄어든 것은 아닌데, 그 사람들을 먹일 식량은 계속 줄었다. 평소라면 시장에서 고르면 됐을 고기부터 점점 구하기 어려워졌다.
대신 말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개와 고양이, 쥐까지 식량으로 팔렸다. 도시에서 함께 살던 동물들이 하나씩 고기 이름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 파리에는 많은 동물이 한곳에 모여 있는 장소가 있었다. 동물원이었다.
동물원 역시 포위된 도시 안에 있었다. 사람 먹을 것도 모자란 형편에 동물을 계속 먹이는 일은 부담이었다. 결국 동물원의 일부 동물이 도살됐고, 그 고기는 정육점과 식당으로 흘러갔다. 캥거루와 영양처럼 파리의 식탁에서 보기 어려웠던 동물들이 요리 재료가 됐다. 동물원을 통째로 먹어치운 것은 아니지만, 살아남은 동물과 팔려나간 동물의 운명은 크게 갈렸다.
이 고기들이 모두 굶주린 사람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돈 있는 손님을 받는 식당에서는 희귀한 고기를 요리해 내놓았다. 굶주림 때문에 시작된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 하기 어려운 식사가 된 셈이다. 고기에 소스를 얹고 코스 요리로 차려내면, 포위된 도시에서도 만찬은 열릴 수 있었다.
코끼리 두 마리도 이때 목숨을 잃었다. 이름은 카스토르와 폴뤼크스였다. 이름까지 붙어 있던 동물이 고기가 되어 팔렸고, 영국인 기자 헨리 라부셰르의 식탁에도 폴뤼크스 한 조각이 올라왔다. 파리에 머물며 포위 생활을 기록하던 그는 이 식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1871년 1월 6일자 기록에서 라부셰르는 전날 폴뤼크스를 먹었다고 썼다. 맛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질기고, 고깃결이 거칠고, 기름졌다. 소고기와 양고기를 구할 수 있는 영국 가정에는 권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파리의 식당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요리해도 코끼리가 좋은 소고기가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맛이 별로였다고 값까지 싼 것은 아니었다. 라부셰르가 적은 코끼리 고기 가격은 파운드당 10프랑, 코는 45프랑이었다. 부위에 따라서도 값이 크게 달랐다. 한때 동물원에서 구경하던 거대한 동물은 이제 어느 부위가 더 비싼지 따지는 고기가 돼 있었다.
이 기묘한 식탁 바깥에서는 훨씬 덜 화려한 겨울이 이어졌다. 라부셰르는 추위에 떠는 여성과 아이들, 먹을 것과 땔감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기록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남아 있는 식량과 석탄을 살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위와 허기가 함께 닥쳤다. 코끼리 요리라는 신기한 이름만으로는 당시 파리의 식사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겨울이 깊어지자 식당에도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고기가 있어도 익힐 불이 부족했다. 연료를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식당들이 생겼고, 작은 알코올램프를 쓰자는 권고까지 나왔다. 라부셰르는 그 방법에 회의적이었다. 알코올램프로 코끼리를 요리하는 일은 파리 사람들의 재주로도 거의 불가능하겠다는 것이다.
도시를 둘러싼 포위는 1871년 1월 말에야 끝났다. 그 겨울의 메뉴는 지금도 놀라운 식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직접 코끼리를 먹어본 기자가 남긴 말은 메뉴판보다 훨씬 소박했다. 고기는 질겼고, 기름졌으며, 이제는 그 고기를 익힐 불마저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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