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는 물과 화장실, 무전 설비까지 준비됐다. 바깥을 내다볼 틈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입구는 벽돌로 막을 예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지브롤터 바위 안에 만든 비밀 관측소였다. 여섯 명을 이곳에 남겨두고, 밖에서는 아무도 그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려 했다.
지브롤터의 바위 안에는 이미 군대가 쓰는 긴 터널들이 있었다. 병사와 장비를 숨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드는 방은 영국군이 지브롤터를 지키고 있을 때보다, 빼앗겼을 때 필요했다. 적이 점령한 뒤에도 안에 남은 사람들이 오가는 배를 관찰해 영국에 알린다는 구상이었다. 암호명은 ‘트레이서’였다.
이 일을 맡을 사람 중에는 군의관 브루스 쿠퍼가 있었다. 그는 1941년 휴가 중 비밀 임무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구체적인 일을 알기 전, 함께할 다른 의사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의대 친구 아서 밀너를 골랐다. 나중에 꾸려진 팀에는 의사 두 명과 무전 담당 세 명, 지휘관 한 명이 포함됐다. 이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짧은 잠입이 아니라 장기간의 고립이었다.
방은 숨는 장소인 동시에 생활공간이어야 했다. 식수와 화장실이 필요했고, 관측한 내용을 보낼 무전실도 마련했다. 바깥을 보는 자리는 동쪽과 서쪽에 따로 있었다. 한쪽은 아주 좁은 틈이었고 다른 쪽은 바위 밖의 작은 턱으로 이어졌다. ‘봉인된 동굴’이라고 해서 빛과 공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굴에 사람을 묻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평소처럼 문을 열고 나가는 생활은 불가능해질 예정이었다.
생활하는 소리도 줄여야 했다. 바닥에는 코르크를 깔았고, 자전거를 이용한 발전 장치도 준비했다. 페달을 밟아 무전 설비에 쓸 전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자전거의 쇠사슬은 소음을 줄이기 위해 가죽 벨트로 바꿨다.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데 필요한 물건을 들이면서도, 그 물건 때문에 은신처가 드러나지 않도록 손을 본 것이다.
공간과 사람을 준비했지만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다. 여섯 명이 적의 머리 위에 숨어 지내며 관측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 관측소가 필요 없어진 뒤에는 출입구가 막혔다. 전쟁이 끝나고도 바위 안에 비밀 방이 있다는 이야기는 남았지만, 누구나 찾아가 확인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탐험가들은 터널을 뒤지며 그 방을 찾았다.
1990년대에 지브롤터 동굴 탐사대가 마침내 숨겨진 공간을 발견했다. 녹슨 철판 뒤에서 바람이 느껴졌고, 안쪽에는 벽돌벽과 감춰진 출입구가 있었다. 벽 뒤로 생활공간과 작은 방, 관측 장소가 이어졌다. 말로만 전해지던 방에 무전 설비의 흔적과 화장실이 남아 있었다.
2008년에는 쿠퍼가 지브롤터로 돌아왔다. 그는 발견된 방이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 준비됐던 곳임을 확인했다. 전쟁 때라면 그가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이 막혔을 장소였다. 수십 년 뒤의 방문에서는, 방을 확인하고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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