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마틴 소령에게는 약혼녀가 있었다. 이름은 팸이었다. 주머니에는 그녀의 사진과 편지가 들어갔고, 약혼반지를 산 영수증도 마련됐다. 극장 표까지 챙겼다. 누군가 소지품을 뒤져본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임무를 떠난 장교의 생활을 떠올릴 만했다. 다만 마틴 소령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1943년 영국 정보 당국은 이미 숨진 남자에게 이 신분을 입혔다. 목적은 그가 지닌 가짜 군사 문서를 독일 측에 읽히는 것이었다. 연합군은 시칠리아 상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대가 다른 곳을 지키도록 만들 수 있다면 유리했다. 비행기 사고로 바다에 빠진 장교를 발견하고 그가 운반하던 비밀을 알아냈다고 믿게 하는 것이 ‘민스미트 작전’의 구상이었다.
해군 정보장교 이웬 몬터규와 공군 장교 찰스 첨리가 계획을 구체화했다. 이름과 계급만 붙여서는 부족했다. 이 사람이 왜 그런 문서를 갖고 있었는지, 어디로 가던 사람이었는지까지 말이 돼야 했다. 그래서 가짜 해병대 장교에게 개인사를 더했다. 남의 눈을 속여야 할 군사 문서 옆에, 군사적으로는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놓였다.
팸의 사진에는 실제 정보기관 직원의 모습이 쓰였다. 하지만 사진 속 여성이 마틴과 약혼한 것은 아니었다. 그 관계도 작전팀이 만든 이야기였다. 이런 물건들은 문서와 별개인 듯 보이면서 문서의 주인을 뒷받침했다. 애인에게 편지를 받고 반지를 산 사람이 우연히 기밀을 갖고 죽었다는 쪽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에 비밀 문서만 달랑 붙어 있는 것보다 믿을 만했다.
문서에는 그리스와 사르데냐 쪽으로 독일의 관심을 돌릴 내용이 담겼다. 진짜 목표인 시칠리아는 상대를 헷갈리게 할 가짜 공격 대상으로 읽히게 했다. 중요한 것은 독일에 직접 문서를 보내는 일이 아니었다. 상대가 남의 비밀을 가로채 얻었다고 생각할 경로가 필요했다. 작전팀은 독일 정보망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스페인 우엘바 부근을 골랐다.
시신은 잠수함 세라프호로 운반돼 스페인 앞바다에 놓였다. 4월 30일 어부가 발견한 뒤 문서가 스페인 당국의 손에 들어갔다. 영국은 중요한 서류를 되찾으려는 연락을 보냈다. 적이 알게 될 가능성을 계산한 연기였다. 서류를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실제로는 그 안의 내용이 독일 측에 넘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서는 독일 정보 당국에 알려졌다. 영국은 독일 측 통신을 해독해 병력 이동을 살폈고, 독일은 그리스 등 다른 지역의 방어를 강화했다. 연합군이 실제로 상륙한 곳은 그해 7월의 시칠리아였다. 시신 한 구가 혼자 전쟁을 이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만들어낸 장교의 서류가 독일의 판단에 들어간 것은 확인됐다.
마틴 소령의 몸으로 쓰인 남자에게는 원래 이름이 있었다. 웨일스 출신의 글린두르 마이클이었다. 그는 런던에서 궁핍하게 지내다가 1943년 1월 숨졌다. 우엘바에 묻힐 때는 만들어낸 장교의 이름을 받았고, 그의 실제 신원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1997년 묘비에는 마이클의 이름이 추가됐다. 작전을 위해 꾸민 인생 아래에, 그 몸으로 살았던 사람의 이름이 뒤늦게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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