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병원에 도착했다고 바로 검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자를 내려 장비를 조립하고, 창문에 검은 천을 걸고, 전기를 마련해야 했다. 마리 퀴리가 전쟁 중에 마련한 이동식 엑스레이 차량은 완성된 진료실을 태운 차라기보다, 도착한 곳을 검사실로 바꿀 도구를 실은 차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프랑스의 병원에는 부상자가 몰려들었다. 학교 같은 임시 건물을 쓰는 곳도 많았고, 전기가 없는 곳도 있었다. 몸속에 총알이나 포탄 파편이 남아 있는지, 남았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했지만 모든 병원에 엑스레이 장비가 갖춰져 있지는 않았다. 장비가 있는 먼 병원으로 부상자를 옮기는 일도 쉬운 해결책은 아니었다.
퀴리는 필요한 장비를 부상자 곁으로 가져가는 일에 나섰다. 돈과 자동차를 기부받고, 차량에 방사선 검사 장비를 실을 수 있도록 손봤다. 연구실에서 방사성 물질을 다루던 명성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는 엑스레이 장비 사용법과 해부학을 익혔고, 자동차 운전과 정비도 배웠다. 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검사 장비도 도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에는 전기를 만드는 방법도 필요했다. 어떤 차량은 자체 발전 장치를 실었고, 어떤 차량은 자동차 엔진으로 발전기를 돌렸다. 병원에 도착해 멈춰 선 뒤에도 엔진이 계속 일해야 했다. 환자를 찍는 장비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쟁 중의 임시 병원에서는 그 장비를 켤 전기부터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퀴리가 전후에 쓴 책에는 이동팀의 일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운전기사가 발전기를 준비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병원 안에 장비를 설치했다. 창문을 가리고, 분리해 싣고 온 검사대를 조립하고, 연결 상태를 확인했다. 익숙한 장소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준비를 30분 안에 마칠 수도 있었다. 차에 탄 사람들은 자기 직함에 적힌 일만 해서는 안 됐다.
검사가 시작되면 누군가는 장비를 다루고 누군가는 관찰 내용을 적었다. 일이 끝나면 다시 분해해 상자에 넣고 다음 요청에 대비했다. 운전과 설치, 검사와 철수가 한 묶음이었다. 퀴리의 딸 이렌도 이 일에 참여했다. 전쟁이 시작된 해에 열일곱 살이었던 딸은 어머니와 함께 부상자들을 위한 방사선 업무를 배웠다.
차량을 늘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사람을 늘리는 일이었다. 장비를 안전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상자 속 기계는 쓸모가 없었다. 퀴리는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그의 책에 따르면 1917년부터 종전까지 교육을 받은 여성 조작 인력은 약 150명이었다. 이동 차량과 고정 검사실이 늘어나면서, 숙련된 이동팀은 새로 생긴 시설의 운영을 도와주는 역할도 맡았다.
전쟁이 끝났다고 이 차량들의 쓸모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퀴리는 장비가 없는 지역과 옮기기 어려운 환자를 위해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봤다. 고장 난 검사실을 대신하는 일도 가능했다. 전쟁터로 보낸 차에 담겨 있던 생각은 단순했다. 환자가 장비까지 갈 수 없다면, 장비가 환자에게 갈 수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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