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주인이 점원을 너무 자랑한 것이 문제였다. 새로 온 청년은 아는 것도 많고 힘도 세며 누구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고 떠들었다.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자기편의 힘센 남자가 있었다. 1831년 일리노이의 뉴세일럼에서, 스물두 살 에이브러햄 링컨과 잭 암스트롱의 레슬링 대결이 성사된 배경이다.

당시 링컨은 대통령도 변호사도 아니었다. 덴턴 오펏의 일을 도우며 이 작은 마을에 자리를 잡아가던 청년이었다. 후대 전기에 따르면 오펏은 링컨의 능력을 높이 샀고, 그 칭찬을 조용히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남의 힘을 자랑하다 보니 정작 힘을 써서 증명해야 하는 것은 점원의 몫이 됐다.

암스트롱은 인근 클레어리스그로브 청년들의 중심인물이었다. 이들은 낯선 사람에게 경주나 힘겨루기를 걸며 상대를 시험하곤 했다. 그런 마을에서 ‘우리 점원은 누구보다 세다’는 말은 그냥 흘려들을 칭찬이 아니었다. 내기가 붙고 구경꾼이 모이면, 한 사람의 자랑은 두 사람이 몸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된다.

훗날 모은 회고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쉽게 서로를 넘어뜨리지 못했다. 반칙 때문에 분위기가 험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872년 워드 레이먼의 전기는 링컨이 그만하자고 제안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더 싸우라고 부추겼다고 전한다.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대결을 끝낼 마음이 없었던 모양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정리된 회고들은 경기의 세부 장면에서 엇갈린다. 에이브러햄 링컨 문서 프로젝트는 무승부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리한다. 하지만 대결 뒤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하다. 암스트롱은 링컨의 친구가 됐다.

링컨은 한동안 암스트롱의 집에 머물렀고 말을 빌리기도 했다. 같은 해 암스트롱이 지역 치안관에 해당하는 직책에 출마했을 때에는 그에게 표를 줬다. 이듬해 블랙호크전쟁에서는 암스트롱이 링컨이 이끄는 중대의 하사로 복무했다. 힘을 겨룬 일화 뒤에 함께 생활하고 서로를 지지한 시간이 이어진 것이다.

관계는 아들 세대까지 이어졌다. 암스트롱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윌리엄 더프 암스트롱이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자 링컨이 변호를 맡았다. 젊은 시절 링컨을 맞아들인 가족과의 인연이 훗날 법정까지 이어졌다. 레슬링 상대라는 이름 하나로 끝날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일화가 오래 살아남은 데에는 훗날 대통령이 된 사람이 한때 거친 힘겨루기에 나섰다는 뜻밖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를 지우고 봐도 이야기는 남는다. 새로 온 청년과 그를 시험하던 마을의 강자는, 서로를 넘어뜨리려던 날 이후 같은 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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