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퓌졸은 무대에 오를 때 옷부터 제대로 갖춰 입었다. 붉은 재킷에 흰 나비넥타이와 장갑을 착용했다. 하지만 이 말쑥한 남자가 손님들에게 들려주는 소리는 엉덩이에서 나왔다. 1890년대 파리 물랭루주의 인기 공연자, ‘르 페토만’이었다. 이름부터 방귀를 내세운 예명이었다.
공연은 소리 한 번 내고 끝나는 장난이 아니었다. 퓌졸은 작고 가느다란 소리와 크고 단단한 소리를 구별하고, 각각에 인물이나 상황을 붙였다. 물랭루주에는 무용과 노래뿐 아니라 별난 재주를 선보이는 공연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의 몸은 관객에게 보여줄 악기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피리를 이용하는 순서도 있었다. 고무관으로 피리를 연결해 공기를 불어넣고, 익숙한 프랑스 노래 ‘달빛 아래에서’를 연주했다. 연주를 듣던 관객이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었다. 우연히 난 소리를 농담으로 넘기는 대신, 다음 소리를 기다리게 만드는 공연을 짠 것이다.
이쯤 되면 공연 내내 장에 가스를 채워둬야 했을 것 같지만, 당시 의사들이 관찰한 퓌졸의 방식은 달랐다. 그는 항문으로 바깥 공기를 들여보낸 뒤 다시 밀어냈다. 의사들은 복부 근육과 항문을 조이는 근육의 힘에 따라 소리의 세기와 높낮이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방귀 소리를 팔고 있었지만, 재료는 장에서 만들어진 가스와 달랐다.
그 차이를 살펴본 사람들은 의사들이었다. 1892년 마르셀 보두앵은 퓌졸의 공연과 검사를 지켜보고 의학 잡지에 관찰을 남겼다. 보고서는 관객들이 처음에는 어떤 속임수가 있다고 의심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의사들 역시 소리만 듣고 돌아가지는 않았다. 퓌졸에게 여러 번 동작을 보여달라고 했다.
의사들이 본 것은 숨겨놓은 장치가 아니라 공기를 들이고 내보내는 몸이었다. 보두앵은 그 공기가 몸속에 잠시 머물렀기 때문에 보통의 장내 가스와 같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무대에서는 우스운 이름으로 불리던 재주가 검사실에서는 관찰하고 설명할 대상이 됐다.
물랭루주가 그 재주를 좋아한 이유는 훨씬 간단했다. 퓌졸의 공연은 손님을 불러 모았다. 극장은 그를 간판 출연자로 삼았고, ‘저작권료를 내지 않는 유일한 예술가’라는 문구도 내세웠다. 음악을 만드는 부위까지 광고의 농담에 들어간 셈이었다.
그렇다고 계약까지 농담으로 처리되지는 않았다. 퓌졸이 자신의 극단인 테아트르 퐁파두르를 세워 따로 공연 활동에 나서자 물랭루주와 갈등이 생겼다. 1894년에는 계약 위반 소송에서 극장이 이겼다. 그 몸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누가 가져갈지는 법정에서 다퉜다.
물랭루주에는 대신 여성 공연자가 등장했다. 그는 치마 아래 감춘 풀무로 비슷한 소리를 냈다. 퓌졸은 1898년 이 대체 공연을 두고 극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이기지 못했다. 관객에게는 엉덩이에서 나는 소리가 웃음거리였고, 공연자와 극장에는 서로 빼앗기고 싶지 않은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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