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기 전, 어떤 이민자들은 가진 돈을 목적지의 화폐로 바꿨다. 새 나라에서 새 생활을 시작할 사람들이니 이상한 준비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 돈을 쓸 은행도, 안내받은 수도도 도착한 곳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폐를 찍는 일은 도시를 세우는 일보다 훨씬 쉬웠다.

1820년대 초 영국에서 소개된 포야이스는 이민을 꿈꾸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나라였다. 농사짓기 좋은 땅이 싸게 나왔고, 수도에는 유럽식 공공건물과 오페라 극장까지 있다고 했다. 열대의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열대병 걱정은 덜 수 있다는 설명도 붙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위험을 하나씩 지워주는 광고였다.

이 나라를 대표해 나타난 사람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그레고어 맥그리거였다. 그는 남아메리카에서 군인으로 활동한 경력을 내세우며 자신을 포야이스의 통치자로 소개했다. 나라 이름을 처음 듣는다고 해서 곧바로 거짓말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대서양 건너에서는 독립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고, 런던에서 그곳 사정을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맥그리거에게는 이야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국기와 지도, 나라를 소개하는 문서와 토지 증서가 있었다. 그는 실제로 오늘날 온두라스 일대의 미스키토 통치자에게 땅을 양도받았다는 문서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토지에 관한 문서가 있다고 해서 그곳에 번듯한 도시와 정부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맥그리거는 그 간격을 홍보물로 채웠다.

살 수 있는 것은 땅만이 아니었다. 투자자는 나라의 채권을 샀고, 이주 희망자에게는 군대나 행정기관의 자리도 제시됐다. 농부는 농장을, 다른 사람은 새 나라에서 맡을 직업을 그릴 수 있었다. 멀리 있는 땅 한 조각이 아니라, 그곳에 도착한 뒤의 생활 전체를 팔고 있었던 셈이다.

첫 이민선은 1822년 9월 런던을 떠났다. 이듬해 1월에는 스코틀랜드에서도 배가 출항했다. 사람들은 재산을 들여 땅을 사고 항해를 준비했으며, 일부는 돈까지 포야이스 지폐로 바꿨다. 그 지폐에는 수도의 은행에서 돈을 지급한다는 약속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은행이 있다는 주소는 종이 위에만 있었다.

중앙아메리카 해안에 내린 이들을 기다린 것은 광고 속의 정착지가 아니었다. 수도 세인트조지프도, 새로 온 사람들을 받아줄 도시도 찾을 수 없었다. 땅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지역에는 원주민의 삶과 역사가 있었다. 없었던 것은 맥그리거가 영국에서 팔아온, 이민자들이 곧바로 들어가 살 수 있다는 나라였다.

돌아갈 배표 한 장을 사서 끝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민자들은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버텨야 했다. 병이 퍼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농장을 경영하거나 관직을 맡겠다는 준비는 먹을 것과 몸을 누일 곳을 해결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쓸모가 없어졌다.

1823년 벨리즈 쪽에서 도움의 손길이 닿아 생존자들이 옮겨졌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떠난 사람과 살아 돌아온 사람의 정확한 수는 자료마다 차이가 난다. 분명한 것은 허위 광고가 투자금 손실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족들이 실제로 바다를 건너 그 약속의 땅에 내렸다.

그런데도 포야이스는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맥그리거는 파리로 가서 다시 투자자와 이주민을 모집했다. 프랑스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났고, 이후에도 토지 증서를 발행했다. 런던으로 돌아와 1830년에 서명한 증서도 남아 있다. 이민자들이 현지에서 겪은 일을 알린 뒤에도 새로운 종이가 찍혀 나왔다.

포야이스가 가장 오래 남은 곳은 중앙아메리카의 해안이 아니었다. 맥그리거가 발행한 지도와 채권, 지폐와 토지 증서였다. 오늘날 그 종이들은 수집과 연구의 대상이 됐다. 한때 사람들이 그것을 손에 쥐고 기다린 것은, 바다 건너에서 살게 될 집과 일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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