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꼭 기차를 움직여야 할까. 제1차 세계대전 말, 파리 근교에서 준비한 답은 전구였다. 긴 줄을 따라 불을 차례로 켜고 끄면, 하늘에서는 불빛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땅에 놓인 모형은 그대로 두고 빛만 달리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 기차는 승객을 태울 필요가 없었다. 차창 너머에 사람이 있을 필요도 없었다. 관객은 멀리, 밤하늘을 날고 있을 독일군 조종사였다. 그에게 철도가 있는 도시처럼 보인다면 제 역할을 다하는 기차였다.
당시 파리는 공습을 받고 있었다. 방어하는 쪽에서는 적의 비행기를 찾아 쏘거나, 불을 꺼서 목표를 찾기 어렵게 할 수 있었다. 프랑스가 준비한 또 다른 방법은 적이 찾는 목표를 엉뚱한 곳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진짜 파리 밖에 가짜 파리를 만들어 그쪽으로 폭탄을 떨어뜨리게 하자는 계획이었다.
오늘날의 지도 앱을 떠올리면 도시 하나를 착각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당시 야간 비행에는 지금과 같은 위성항법 장치가 없었다. 조종사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강의 모양과 철도, 지상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같은 단서를 찾아야 했다. 밤의 도시는 건물 하나하나보다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윤곽으로 읽혔다.
그렇다면 낮에 걸어 다니며 구경할 만한 파리를 지을 필요는 없었다. 높은 곳에서 잠깐 내려다봤을 때 그럴듯한 파리면 됐다. 진짜 건물을 똑같이 짓는 대신, 조종사가 도시라고 알아볼 단서를 땅 위에 펼쳐놓는 일이 중요했다.
1917년의 초기 시도를 거쳐 1918년에 구체화된 구상은 제법 컸다. 파리 도심과 철도, 공장 지대 등을 흉내 낼 구역들을 도시 밖에 나눠 배치하려 했다. 센강이 굽이치는 모양까지 이용할 수 있는 장소가 검토됐다. 가짜 거리 몇 개를 꾸미는 수준을 넘어, 하늘에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을 옮겨놓으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전기 기술자 페르낭 자코포치였다. 그가 다룰 핵심 재료는 빛이었다. 목재로 형태를 잡고 천을 씌운 모형도 조명에 따라 지붕이나 공장처럼 보일 수 있었다. 천은 빛이 어느 정도 통과하도록 하고, 표면에는 색을 입혔다. 무대 장치를 관객석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는 셈이었다.
불을 무조건 밝게 켜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공장 지붕의 유리창은 깨끗한 전구처럼 환하게 빛나지 않는다. 먼지가 묻고 더러워진 창을 통과한 빛처럼 보여야 했다. 모형의 조명도 그 흐릿한 느낌을 흉내 내도록 했다. 가짜라는 것을 감추려면 오히려 덜 선명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가동 중인 공장에는 또 다른 표정이 필요했다. 흰색과 노란색, 붉은색 조명을 쓰고 인공 수증기를 더해 불이 켜진 작업장의 모습을 만들려 했다. 건물 안에서 정말 물건을 생산할 필요는 없었다. 밤에도 무언가 돌아가고 있다는 흔적만 하늘에 보이면 됐다.
철도에서는 빛이 움직여야 했다. 나무로 만든 가짜 열차 옆에 차창처럼 보이는 불빛을 두고, 긴 구간의 전구를 순서대로 점멸시키는 방식이 고안됐다. 기차의 무게나 엔진 소리는 이 무대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멀리서 본 조종사가 저 아래 열차가 달린다고 받아들이는지가 관건이었다.
다만 이 거대한 속임수가 완성된 파리 하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파리 북동쪽 빌팽트 부근 등에서 일부 시설을 만드는 데 그쳤고, 나머지 계획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1918년 11월 전쟁이 끝나면서 가짜 도시를 더 지을 이유도 사라졌다. 실제로 적 폭격기를 속여 도시를 구했다는 전과도 확인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뒤 이 계획은 1920년 잡지 보도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기록 속 가짜 파리에는 사람이 살 집보다,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일 불빛이 더 중요했다. 밤하늘에서 내려다볼 관객을 위해 준비한 도시였다. 무대 일부는 만들어졌지만, 공연은 끝내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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