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1월, 미국 프린스턴에 살던 아인슈타인에게 뜻밖의 일자리 제안이 왔다. 대학의 교수직도 연구소장 자리도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돼 달라는 제안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에게 보낼 만한 최고의 존경 표시였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해야 하는 일이 됐다.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 하임 바이츠만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미국 주재 대사 아바 에반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뜻을 물었다. 11월 17일 자 편지에 담긴 질문은 구체적이었다. 의회가 대통령으로 선출한다면 그 자리를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미 선출됐다는 통보가 아니라, 후보가 될 의향을 확인하는 단계였다.

편지에는 필요한 조건도 적혀 있었다. 이스라엘로 이주하고 시민권을 받아야 했다. 대신 과학 연구를 계속할 자유와 여건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세계가 아는 그의 업적을 국가의 명예로 삼고 싶지만, 그 업적을 낳은 연구까지 포기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제안이었다. 이름만 빌리는 명예직 부탁으로 읽고 넘길 수 있는 편지는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평생 객관적인 문제를 다뤄 왔지만, 사람들을 상대하고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타고난 능력과 경험은 부족하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줄고 있다는 점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설명에서 나이는 유일한 이유가 아니었다. 더 젊었더라도 자신이 그 일에 알맞은 사람인지 별개의 문제라는 뜻이었다.

이 답을 ‘사람을 싫어한 천재’의 농담처럼 읽으면 편지의 분위기를 놓친다. 그는 제안에 깊이 감동했으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을 안타깝게 여긴다고 썼다. 유대인들과 맺은 유대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밝혔다. 존경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존경받는 사람이 곧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라는 판단을 전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이 정치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과학자였던 것은 아니다. 며칠 뒤 신문 편집자 아즈리엘 카를레바흐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한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는, 실무적인 이유 외에 정치적 우려도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이스라엘 건국에 따랐던 폭력과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갈등 역시 그의 시야에 있었다. 사람 상대에 서툴다는 한 문장만으로 당시 생각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 두 번째 대통령은 정치인 이츠하크 벤츠비가 됐다.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에 남았다. 우주의 법칙을 바꿔 설명한 사람에게도 새 직함 하나를 더 받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제안한 쪽은 그의 명성을 봤고, 답장하는 쪽은 그 자리에 앉은 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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