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가서 기차가 부서지는 모습을 본다. 1896년 미국 텍사스의 한 철도회사가 내놓은 상품은 그런 여행이었다. 사고 현장으로 관광객을 데려가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관객이 모인 뒤, 그들 앞에서 사고를 만들어낼 계획이었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철도회사 직원 윌리엄 크러시였다. 회사에는 오래된 기관차가 있었고, 승객을 더 태울 이유가 필요했다. 기관차 두 대를 마주 달리게 하면 평소에는 돈을 주고도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질 터였다. 회사가 팔 것은 충돌 현장까지 오가는 기차표였다.
충돌할 기관차부터 홍보에 동원됐다. 한 대는 초록색, 다른 한 대는 붉은색으로 칠해 여러 마을에 선보였다. 여름 내내 광고가 돌았고 신문은 준비 소식을 전했다. 부서질 열차들이 먼저 사람들 앞에 나타나 자신들의 마지막 운행을 예고한 셈이다.
행사장은 웨이코 북쪽의 골짜기에 마련했다. 기존 노선과 가까워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편한 곳이었다. 충돌용 선로를 놓고 관람석과 기자석, 전신 업무를 볼 시설을 세웠다. 식당과 음료 판매대, 구경거리가 들어섰다. 하루짜리 행사에는 하루짜리 마을이 필요했다.
그곳의 이름도 크러시였다. 기획자의 성을 그대로 딴 간판이 관객을 맞았다. 9월 15일, 특별열차를 타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현장은 수만 명의 군중으로 채워졌다. 어떤 사람은 먹을 것을 펼쳤고, 어떤 사람은 연설을 들으며 충돌 시간을 기다렸다. 철도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는 능력부터 먼저 보여준 날이었다.
관객과 기관차 사이에 거리를 두면 안전하리라는 판단이 있었다. 하지만 충돌하는 것은 무거운 쇳덩어리만이 아니었다. 증기기관차 안에는 압력을 받은 보일러가 있었다. 예상대로 기관차가 찌그러져 멈출지, 그 안의 압력까지 터져 나올지가 문제였다. 행사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가정은 충돌 장면 자체보다 그 뒤에 있었다.
오후가 되자 두 기관차를 마주 세웠다. 크러시는 말 위에서 출발 신호를 보냈다. 열차는 서로를 향해 달렸고 승무원들은 충돌 전에 뛰어내렸다. 이제 사람이 조종하지 않는 두 열차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관객이 보려고 온 순간이 다가왔다.
기관차는 부딪혔다. 보일러도 터졌다. 금속 파편이 관객 쪽으로 날아왔고,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현장을 촬영하던 사진사도 한쪽 눈을 잃었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된다는 약속은 파편이 날아가는 거리 앞에서 무너졌다.
회사는 피해 보상에 나섰다. 현금과 철도 이용권이 합의에 쓰였다. 크러시는 해고됐다가 다시 고용됐다. 행사는 참사로 끝났지만 그의 철도회사 경력까지 그날 끝난 것은 아니었다. 큰 관심을 끌겠다는 기획은 성공했어도, 그 관심이 어떤 모습일지는 통제하지 못했다.
수습 열차가 큰 잔해를 치웠고, 일부 사람들은 부서진 조각을 기념품으로 가져갔다. 관객이 돌아가자 천막과 판매대도 철거됐다. 수만 명이 몰렸던 크러시라는 마을은 행사가 끝나면서 사라졌다. 그날을 위해 만든 이름과 장소는 더 이상 같은 쓰임이 없었다.
대신 사진과 기록, 음악이 남았다. 스콧 조플린은 이 사건을 소재로 행진곡을 썼다. 고철이 될 기관차로 잊지 못할 구경거리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정말로 오래 기억됐다. 다만 남은 사진에서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은, 광고대로 부서진 열차만이 아니었다. 그 충돌을 안전한 쇼라고 믿고 모였던 군중도 함께였다.
편집 책임
팩토스브레인 편집부
이 기사는 팩토스브레인 편집부가 자료를 검토하고 편집 원칙에 따라 작성·검수했습니다. 오류 제보는 정정 정책에 따라 확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