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을 준비하면서도 편지의 예의는 챙겼다. 윈스턴 처칠은 자신을 가둔 당국에, 이제 도망칠 예정이지만 그동안 포로를 대하는 태도는 인도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친절하게 대해준 데 감사한다고 적었다. 직접 정중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도 유감이라고 했다. 편지는 탈출한 뒤 침대에서 발견되도록 남겨 둘 생각이었다.
1899년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일이다.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처칠은 당시 보어전쟁을 취재하던 종군기자였다. 타고 있던 장갑열차가 공격받았을 때 탈출을 돕다가 붙잡혀 프리토리아의 수용소에 갇혔다. 그는 기자이니 석방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상대는 전투에 관여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결국 처칠은 답장을 기다리는 대신 빠져나갈 길을 찾았다.
그의 당시 기록에 따르면 계획은 생각보다 불완전했다. 경비병들의 움직임을 살펴 담을 넘을 틈을 찾았지만, 담 너머부터는 막막했다. 이웃집 정원에서 빠져나오고, 시내를 통과하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포르투갈령까지 가야 했다. 편지에는 바깥 친구들과 준비가 잘돼 있다고 자신 있게 썼지만, 실제 탈출기는 외부와 연락하려던 시도들이 실패했다고 밝힌다.
첫 시도는 경비병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무산됐다. 다음 날인 12월 12일 밤에야 처칠은 담을 넘었다. 그러나 함께 빠져나오려던 동료는 뒤따라오지 못했다. 돌아갈 수도 없는 그는 혼자 움직이기로 했다. 문제는 지도와 나침반이 안에 남은 동료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손에 있는 것은 돈과 초콜릿이었고, 국경까지 가는 길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처칠은 철길을 따라가다 화물열차에 올라탔다. 자루들 사이에 몸을 숨겼지만 목적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새벽이 되기 전에 내려 몸을 숨겼고, 낮에는 기다려야 했다. 처음 담을 넘었을 때의 해방감과 달리, 배고픔과 피로 속에서 다음 밤을 버티는 일은 훨씬 느리고 불안했다. 그가 쓴 탈출기에도 이 기다림이 길게 남아 있다.
계속 혼자 걸어서 성공한 탈출은 아니었다. 처칠은 탄광의 영국인 관리인 존 하워드에게 도움을 받았고, 광산에 숨을 곳을 얻었다. 낯선 사람에게 정체를 드러내는 일은 다시 붙잡힐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이었다. 이번에는 자신을 넘겨줄 사람 대신 도와줄 사람을 만났다.
이후 화물열차에 숨어 포르투갈령의 항구 로렌수마르케스에 도착했다. 오늘날 모잠비크의 마푸투다. 그곳에서 영국 영사를 찾아갔고, 다시 영국군 쪽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담을 넘는 데 성공한 밤과 안전한 곳에 도착한 날 사이에는 기차, 은신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1900년에 출간한 책에서는 도움받은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처칠은 서문에서 자신이 입을 다물어야 한 사람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쟁이 끝나면 빈 부분을 채우겠다고도 했다. 탈출 이야기를 팔 수 있는 기자였지만, 곧바로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처음 남겨 두려던 편지의 자신감과 실제 여정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었다. 편지 속 탈옥자는 바깥 준비를 믿고 정중하게 떠난다. 탈출기 속 처칠은 동료의 주머니에 지도를 남겨 둔 채,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기차에 몸을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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