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2월, 미국 아이다호주의 한 아이가 조부모를 만나러 기차 여행을 했다. 그랜지빌에서 약 117km 떨어진 곳까지 가는 길이었다. 메이 피어스토프라는 이 아이의 여행이 오래도록 회자된 것은 멀리 갔기 때문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를 보내며 낸 돈이 기차표 값이 아니라 우편요금 53센트였기 때문이다.
메이는 우편물과 함께 이동했다. 그렇다고 상자에 넣어 봉하거나 우편 자루 속에 혼자 밀어 넣은 것은 아니었다. 철도 우편 일을 하던 친척이 동행했다. 도착할 곳은 조부모의 집이었고, 곁에는 아이를 아는 어른이 있었다. 여행 자체는 익숙한 어른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이었지만, 요금을 계산한 방식은 소포였다.
이 이상한 조합이 나타난 배경에는 막 시작한 서비스가 있었다. 미국 우체국은 1913년 1월 소포 우편을 도입했다. 농촌 주민들이 우편으로 물건을 주고받을 기회가 크게 늘었다. 어떤 물건을 얼마나 멀리, 얼마에 보낼 수 있는지 새 제도를 익혀가던 때, 몇몇 부모는 아이도 그 길로 보낼 수 있는지 시험했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하이오주에서는 생후 여덟 달 된 아기가 우편 직원의 손에 맡겨졌다. 목적지는 가까운 할머니 집이었다. 부모는 우편요금 15센트를 냈고, 50달러짜리 보험까지 들었다. 아기는 무사히 도착했다. 신문이 주목할 만한 이야기는 그 짧은 배달만으로도 충분했다.
메이의 여행은 그보다 훨씬 길었다. 하지만 소포 요금은 승객의 기차표보다 쌌다. 여기에 친척이 철도 우편 직원이라는 사정이 더해졌다. 부모가 전혀 모르는 운송망에 아이를 던져 넣은 것으로 상상하면, 이 사건에서 실제로 아이를 데리고 간 사람이 사라진다.
당시 농촌의 우편 직원은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었다. 미국 우정청의 역사 연구자 제니 린치는 이런 사례에서 주민들이 배달원을 얼마나 믿고 의지했는지에 주목한다. 편지를 전해주는 그 사람에게 아이를 부탁한 것이다. 물론 개인 사이의 신뢰가 있다고 해서 우체국이 어린이 운송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우편 당국은 사람을 우편물로 받아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그런데 지시가 내려간 뒤에도 아이를 데려다준 사례가 나왔다. 1915년 켄터키에서 세 살 아이가 우편으로 이동하자, 당국은 규정을 어기고 어떻게 아이를 열차에 태웠는지 조사했다. 앞서 누군가 해봤다는 사실이 다음 직원에게 허가증이 되어주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를 찾아보면 우편 자루에 아기가 들어 있는 옛 사진도 만날 수 있다. 사진만 보면 아기를 짐처럼 잔뜩 실어 날랐던 시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편박물관은 그런 사진을 ‘아기를 우편으로 보낸다’는 발상을 재미있게 연출한 사진으로 설명한다. 실제 이동 사례와 사진 속 장면을 그대로 겹쳐서는 안 된다.
메이의 여행에는 놀라운 발명품이나 비밀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다니던 열차, 우편 일을 하던 친척, 그리고 싼 소포 요금이 있었다. 같은 아이가 같은 길을 가는데 어떤 요금표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평범한 친척 방문이 우편 역사에 남을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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