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시의회가 받은 제안은 얼핏 손해 볼 게 없어 보였다. 저수지에 물을 채워주면 1만 달러를 달라. 실패하면 돈을 받지 않겠다. 제안서를 보낸 찰스 햇필드는 댐을 짓거나 다른 곳의 물을 끌어오겠다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겠다는 사람이었다.

1915년 말, 샌디에이고에서는 물 걱정이 커지고 있었다. 몇 년째 강으로 흘러드는 물이 평년보다 적었다. 당장 저수지가 모두 바닥난 것은 아니었지만, 가뭄이 길어지면 농장과 도시가 함께 곤란해질 수 있었다. 햇필드의 제안을 지지하는 쪽은 계산이 간단했다. 성공하면 싼값에 물을 얻고, 실패하면 돈을 안 주면 됐다.

햇필드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 비를 불러왔다는 명성을 얻고 있었다. 원래 재봉틀을 팔던 그는 기상에 관심을 두고 약품을 섞어 실험했다. 자신은 물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공기 중의 수분이 비로 떨어지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작업 뒤 비가 왔다는 신문 기사들이 그의 이력서였다. 그런 기사가 있다는 것과 약품에 실제 효과가 있다는 것은 물론 다른 문제였다.

시의회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계약서 작성을 지시했다. 하지만 서명한 계약서가 마련되기도 전에 햇필드는 일을 시작했다. 모레나 저수지 근처에 형제와 함께 나무 탑을 세우고, 탑 위에 놓은 용기에 약품을 부었다. 일단 시작한 작업과 마무리하지 않은 계약은 나중에 대금을 놓고 다툴 때 문제가 됐다.

새해가 되자 비가 왔다. 그리고 1월 중순에는 반가워할 수준을 넘어섰다. 불어난 강물이 다리를 무너뜨렸고, 열차가 멈췄으며, 전화선이 끊겼다. 도시에서 떨어진 저수지 옆에 있던 햇필드는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비를 내리겠다고 온 사람이 일하고 있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연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일보다 그 연결이 먼저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폭우는 한차례 지나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미 물을 머금은 땅에 다시 비가 쏟아졌다. 1월 27일에는 로어오테이 댐이 무너졌다. 저수지에서 빠져나온 물이 계곡 아래의 집과 농장을 휩쓸었고 사람들도 목숨을 잃었다. 모레나에 물을 채우려던 이야기는 어느새 도시가 홍수 피해를 수습하는 이야기가 됐다.

햇필드는 그래도 자신이 약속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모레나의 수위가 올라갔으니 대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비를 늘렸다고 하면서도 홍수 피해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저수지에 물을 채운 공로는 자기 것이지만, 다리와 집이 떠내려간 책임까지 지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시의 생각은 달랐다. 서명한 계약서도 없었고, 내린 비가 햇필드의 솜씨라는 증거도 없었다. 실제로 그달의 거친 날씨는 샌디에이고 주변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미국 서부의 넓은 지역에 폭우와 폭설이 이어졌다. 저수지 옆의 약품 탑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날씨의 범위가 너무 컸다.

대금 문제에는 더 곤란한 조건이 붙었다. 햇필드의 공로를 인정해 돈을 준다면, 시는 홍수 피해에 대한 책임도 그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시를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는 수백만 달러 규모였다. 받으려는 돈은 1만 달러인데, 그 돈이 자기 덕분이라는 주장을 밀어붙이면 훨씬 큰 청구서가 따라올 수 있었다.

햇필드는 소송으로 돈을 받으려 했지만 결국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사건은 오래 남아 있다가 1938년에 기각됐다. 그렇다고 비를 부르는 일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그를 찾았고, 그는 자신이 일한 뒤 비가 왔다는 기사들을 계속 모았다.

샌디에이고에서 햇필드가 내세울 수 있는 실적은 대단했다. 그가 온 뒤 비가 왔고, 물이 불었으며, 온 도시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됐다. 다만 그 실적을 대금으로 바꾸려는 순간에는, 어느 만큼의 비까지 자기 것이라고 할지가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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