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재판은 준비됐다. 무덤에서 꺼낸 시신에 교황의 옷을 입혀 자리에 앉히고, 옆에는 대신 답변할 성직자를 세웠다. 897년 로마에서 재판을 받게 된 사람은 전임 교황 포르모소였다. 그를 심판하려고 나선 사람도 교황, 스테파노 6세였다.
죽은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이 재판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위가 달라질 수 있었다. 포르모소가 정당한 교황이 아니었다고 결정하면, 그가 교황으로서 한 일도 부정할 수 있었다. 그에게 서품을 받은 성직자들에게는 과거의 인물을 모욕하는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자신이 맡은 자리가 유효한지까지 흔들리는 일이었다.
포르모소가 살던 시기의 교황은 종교 문제만 다루지 않았다. 황제의 대관식에도 관여했고, 이탈리아의 권력 다툼에 깊이 얽혀 있었다. 포르모소는 람베르토를 황제로 인정했지만, 이후 경쟁자 아르눌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르눌프가 로마에 들어온 뒤에는 그에게도 황제의 관을 씌웠다. 포르모소가 죽었다고 해서 그 선택으로 생긴 적대 관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재판에서 꺼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주교의 자리였다. 포르모소는 이미 포르토의 주교였는데 로마의 주교, 곧 교황이 됐다는 이유로 공격받았다.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승진이 무슨 잘못이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주교가 자신이 맡은 교구를 떠나 다른 교구로 옮기는 것을 금하는 규정이 있었다. 권력 다툼은 그런 교회 규정을 무기로 삼았다.
판결은 유죄였다. 포르모소가 한 일과 그가 베푼 서품은 무효로 선언됐다. 시신에서 교황의 옷을 벗기고 오른손 손가락을 훼손하는 일까지 이어졌다. 끝내 시신은 테베레강에 버려졌다. 재판은 죽은 사람의 경력을 지우려 했고, 그가 남긴 몸에도 처벌을 가했다.
스테파노가 그 판결을 오래 지켜본 것은 아니었다. 몇 달 뒤 그는 감옥에 갇혔고, 그곳에서 목이 졸려 죽었다. 포르모소의 처지도 다시 바뀌었다. 같은 해 후임 교황 시기에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다시 묻혔고, 앞선 재판의 결정도 취소됐다. 교황이 바뀌자 죽은 교황에게 내린 처분도 바뀐 것이다.
그 뒤에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포르모소가 한 일을 인정하는 결정이 나왔다가, 나중에는 다시 부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특히 그에게 서품을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서품을 베푼 상태라 문제는 더 멀리 번졌다. 이미 죽은 한 사람의 자격을 없던 것으로 만들려 하자, 그 뒤를 이어 일하던 성직자들의 자격까지 줄줄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이 사건의 후일담에는 시신을 다룬 기록만 남아 있지 않다. 포르모소가 베푼 서품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글들도 남았다. 피고인은 끝내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두고 계속 논쟁했다. 무덤에서 꺼낸 교황을 다시 묻는 것으로 재판의 파장이 끝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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