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12월, 버킹엄궁의 소파 밑에서 침입자가 발견됐다. 여왕의 침실과 가까운 방이었다. 끌려 나온 사람은 낯선 얼굴도 아니었다. 2년 전에도 궁 안에 들어왔다가 붙잡힌 소년, 에드워드 존스였다.
그의 첫 번째 소동은 1838년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궁의 직원이 대리석 홀에서 소년을 발견했고, 도망치던 존스는 추격 끝에 붙잡혔다. 몸에는 검댕이 묻어 있었다. 궁 안에서는 칼과 옷가지 등이 발견됐고, 굴뚝으로 드나든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경비병과 경찰이 지키는 왕궁에 어린 소년이 들어와 돌아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 사건이었다.
존스의 설명은 의문을 깔끔하게 풀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른 이름을 댔고, 궁에서 지낸 기간에 대한 말도 달라졌다. 어디로 들어와 얼마 동안 숨어 있었는지, 그가 늘어놓은 말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다만 구경하고 싶어서 들어왔다는 소년의 변호는 법정에서 효과가 있었다. 그해 12월 재판에서 그는 무죄 평결을 받고 풀려났다.
한 번의 소동으로 끝났다면 기묘한 궁궐 구경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1840년의 존스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발견된 곳은 정문도, 넓은 정원도 아니었다. 왕실 가족이 실제로 생활하는 방의 소파 아래였다. 빅토리아 여왕이 첫아이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여서, 침입은 더욱 민감한 문제가 됐다.
이번에 사건을 다룬 것은 여왕의 자문 기구인 추밀원이었다. 조사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존스는 궁 안의 대화를 듣고 글을 쓰고 싶었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그 말이 다시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그는 석 달 동안 수감됐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소년의 이름을 이야기했고, 안에서는 그가 다시 궁에 들어오지 않게 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1841년 3월, 풀려난 지 보름도 되지 않아 또 붙잡혔다. 장소는 다시 버킹엄궁이었다. 이번에는 궁에서 가져온 고기와 감자를 먹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다시 들어간 데다, 그 안에서 식사까지 한 것이다.
경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앞선 침입 뒤 궁 내부를 살피는 야간 경계가 강화됐고, 순찰 중인 경찰이 그를 찾아냈다. 덕분에 잡기는 했지만 이미 안으로 들어온 뒤였다. 존스는 다시 석 달의 수감 생활을 하게 됐다. 붙잡고, 가두고, 풀어주면 다시 나타나는 소년 때문에 같은 문제가 되풀이됐다.
궁 밖에서 이 사건은 훌륭한 이야깃거리였다. 은행가 토머스 레이크스도 일기에 존스를 적었다. 기록에는 ‘이니고 존스’라는 건축가의 이름에 ‘안으로 들어간다’는 영어를 겹친 말장난까지 등장한다. 노래와 풍자물에서도 소년은 궁에 드나드는 인물로 살아 움직였다. 실제 궁 안에서는 경비 문제였던 일이 밖에서는 웃음을 파는 소재가 됐다.
존스는 이후 바다로 나가 선원 생활을 하게 됐다. 하지만 풍자잡지 《펀치》는 그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잡지는 존스의 항해일지를 흉내 낸 글을 실었고, 그 안의 노래에서는 궁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는 소망까지 대신 불렀다. 그것은 존스가 남긴 진짜 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년 존스’의 목소리였다.
살아 있는 존스를 궁에서 멀리 보내는 일과, 이야기 속 존스를 내보내는 일은 달랐다. 왕실은 침입자를 붙잡을 수 있었지만, 신문과 노래에 들어간 소년은 계속 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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