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 앞에 새 천 마리가 모이고 있었다. 1932년 11월, 서호주에서 에뮤를 잡으러 나온 군인들이 물가에서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넓은 들판에서 흩어져 달리는 새를 쫓는 대신, 물을 마시러 오는 무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려 했다. 하지만 사격을 시작하자 총이 고장 났다. 쓰러진 새는 열두 마리 정도였고, 나머지는 달아났다.
훗날 ‘에뮤 전쟁’으로 유명해진 사건이다. 군인과 기관총은 실제로 동원됐지만, 국가가 새를 상대로 정식 전쟁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농작물을 망가뜨리는 야생동물을 줄이려고 군의 도움을 받은 일이었다. 그 사정을 모르면 군인들이 심심해서 새를 쫓아다닌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도움을 요청한 농민들에게는 생계가 걸려 있었다.
이 지역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군인 출신 주민들이 있었다. 대공황으로 밀값이 떨어진 와중에 에뮤 떼까지 농장으로 내려왔다. 새들은 곡식을 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밭을 짓밟고 울타리를 망가뜨렸다. 생긴 틈으로 토끼까지 들어왔다. 농민들이 지키려던 것은 새 몇 마리에게 먹힐 낟알이 아니라 한 해 농사였다.
요청을 받은 국방장관 조지 피어스는 군을 보냈다. 메러디스 소령이 이끄는 소규모 인원에게는 루이스 기관총 두 정과 탄약이 주어졌다. 모여 있는 새들을 향해 연속으로 쏘면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장비였다. 그런데 총을 쏠 수 있다는 것과, 새들이 총 앞에 모여 있어 준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에뮤는 위험이 닥치자 작은 무리로 흩어졌다. 한 덩어리로 움직일 때는 커 보이던 표적이 여러 방향으로 갈라졌다. 군인들이 바라던 대열은 유지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새를 한곳으로 몰아보려 했지만, 새들은 들판과 수풀로 빠져나갔다. 물가에서 기다리는 방법을 택한 것도 이런 어려움을 피하려는 시도였다. 그나마 무리가 모인 기회에는 총이 말을 듣지 않았다.
11월 초 군인들이 철수하자 이번에는 농민들이 반발했다. 밖에서는 우스운 작전으로 보였지만, 군대가 돌아간다고 밭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도움을 다시 요청했고 군은 그달 중순 작전을 재개했다. 처음 며칠의 실패와 철수만으로 끝난 이야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두 번째 작전에서는 더 많은 에뮤를 잡았다는 보고가 나왔다. 다만 사살한 새와 부상을 입고 달아난 새를 얼마나 정확히 셌는지는 따져볼 문제로 남았다. 군인들은 12월에 다시 철수했다. 의회에서는 작전의 효과뿐 아니라 누가 탄약값을 내는지까지 질문이 나왔다. 농장에 내려온 새 때문에 시작된 일이 국방 예산을 설명해야 하는 문제로 커졌다.
이후에도 울타리를 늘리고 에뮤를 잡은 사람에게 보상금을 주는 방식으로 대응이 이어졌다. ‘새가 군대를 이겼다’는 후일담과 달리, 농민들이 에뮤와 화해하고 밀밭을 넘겨준 결말은 없었다. 군인들이 떠난 뒤에도 밀은 자랐고, 농민들은 새가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밭을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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