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기구는 하늘에 떠 있지 않았다. 얼음 위에 주저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북극으로 날아가겠다며 떠난 탐험대가 직접 남긴 사진이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세상 사람들이 보게 되기까지는 33년이 걸렸다. 사진을 찍은 사람도, 함께 떠난 사람들도 돌아오지 못했다.
출발은 1897년 7월이었다. 스웨덴의 기술자 살로몬 아우구스트 안드레는 닐스 스트린드베리, 크누트 프렝켈과 함께 스발바르 제도에서 기구에 올랐다. 이름은 독수리라는 뜻의 ‘외르넨’. 불로 공기를 데우는 열기구가 아니라 수소를 채운 기구였다. 얼음 위를 힘겹게 걸어가는 대신 하늘로 북극을 지나며 관측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도에 채워 넣을 곳이 많은 시대에,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발상은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느냐였다. 안드레는 기구에서 긴 밧줄을 늘어뜨려 지면에 끌면 움직임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밧줄부터 잃었다. 기구를 띄우는 것과 북극까지 몰고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안개와 구름 속에서 비행을 이어가던 세 사람은 7월 14일 얼음 위에 내려앉았다.
이제 하늘에서 내려다보려던 얼음을 직접 건너야 했다. 세 사람은 짐을 썰매에 싣고 움직였다. 식량을 마련해둔 프란츠요제프 제도 쪽을 향했지만,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사흘 남짓한 비행 뒤에 몇 달에 걸친 이동이 이어졌다. 출발할 때의 기구는 더 이상 그들을 실어 나를 수 없었고, 탐험을 위한 장비와 물자는 스스로 끌고 가야 할 짐이 됐다.
그동안 바깥세상에 전해진 소식은 끊겼다. 처음에는 탐험대가 보낸 전서구가 소식을 가져왔다. 이후에는 누군가 보았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세 사람이 돌아오거나 행방이 확인되는 일은 없었다. 어디까지 날아갔는지, 기구에서 내린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세월이 흘렀다.
1930년, 크비퇴위아라는 작은 섬에서 다른 탐사대가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출발 지점에서 동쪽으로 약 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유해와 물건들 사이에는 일기와 사진의 원판도 있었다. 일기 일부는 읽을 수 있었고, 오래된 사진도 현상이 가능했다. 없어진 줄 알았던 여행의 장면들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기록을 맞춰보자 비행이 끝난 뒤의 여정이 조금씩 이어졌다. 기구의 착륙은 곧바로 세 사람의 죽음을 뜻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서 얼음을 건넜고,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다. 다만 마지막 날들까지 완전히 복원할 수는 없었다. 세 사람이 정확히 무엇 때문에 사망했는지는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남은 사진은 많은 것을 보여줬지만, 모든 질문에 답하지는 못했다.
그들이 타고 떠난 기구의 천 조각도 남아 있다. 미 의회도서관이 보관한 것은 사고 현장에서 주운 잔해가 아니라, 제작을 준비할 때 따로 둔 견본이다. 한쪽에는 아직 떠나기 전의 계획이, 다른 쪽에는 얼음 위에 내려앉은 기구의 사진이 남았다. 돌아와 직접 들려주지 못한 여행은 그렇게 서로 다른 곳에 보관된 물건들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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