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음식 조각을 실에 묶었다. 고기와 빵, 얇게 썬 양배추였다. 그것을 환자의 입에 넣은 게 아니라, 배에 남은 구멍을 통해 위 속으로 내려보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실을 당겨 꺼냈고, 음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살폈다. 1825년 윌리엄 보몬트가 남긴 실험 기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앞에 있던 사람은 알렉시 생마르탱이었다.

세 해 전 생마르탱은 미국 매키낵섬에서 사고로 총에 맞았다. 군의관이던 보몬트가 치료를 맡았고, 그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상처는 보통처럼 닫히지 않았다. 위와 몸 바깥이 연결된 통로가 남은 것이다. 회복한 뒤에도 이 구멍을 통해 위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오늘날처럼 작은 카메라를 삼켜 몸속을 살펴볼 수 없던 시대에, 보몬트는 살아 있는 위가 일하는 모습을 볼 기회를 얻었다.

그의 책에 실린 8월 1일 실험에서 빵과 양배추는 고기보다 먼저 변했다. 보몬트는 음식을 꺼내 살핀 뒤 다시 넣었고, 시간이 지나면 또 꺼냈다. 그런데 음식이 실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모두 완전히 소화됐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는 뒤에 설명을 덧붙였다. 빵은 위액을 먹고 부드러워져 실에서 떨어졌을 수 있고, 잘게 썬 양배추는 덩어리 고기보다 위액에 닿는 면이 많았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관찰할 수 있어도, 보이는 것을 해석하는 문제는 남았다.

실험 도중 생마르탱은 통증과 불편함을 호소했다. 보몬트는 남은 음식을 꺼낸 뒤 더 넣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책에는 음식의 변화와 함께 실험을 받는 사람의 상태도 남았다. 구멍을 통해 음식을 넣고 꺼내는 일은 그저 신기한 관찰법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견뎌야 하는 과정이었다.

보몬트는 위액을 밖으로 꺼내는 실험도 했다. 작은 병에 담은 위액에 고기를 넣고 따뜻하게 유지했다. 비슷한 고기 조각은 생마르탱의 위 안에도 넣었다. 몸 밖에서도 고기는 변했지만, 그의 관찰에서는 위 안의 고기가 더 빨리 분해됐다. 위가 단순히 음식을 움직이는 주머니가 아니라, 그 안의 액체가 음식에 작용하는 장소라는 점을 살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진료실에서 끝나지 않았다. 생마르탱은 보몬트의 집에서 일하며 숙식과 돈을 받았고, 계약에는 실험을 허용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가 고용주이기도 했던 셈이다. 계약서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얼마나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었는지까지 알 수는 없다. 실험에 참여하는 일과 당장 살아가는 일이 서로 얽혀 있었다.

그렇다고 생마르탱이 늘 의사 곁에 머문 것은 아니다. 그는 캐나다로 돌아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일했다. 보몬트의 책에는 그가 자신의 허락 없이 떠났다는 불만과, 다시 찾아 데려오려 한 과정이 적혀 있다. 의사에게는 연구가 중단된 시간이었지만, 생마르탱에게는 가족과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이후 그가 돌아오면서 실험도 다시 이어졌다.

보몬트는 1833년 연구 결과를 책으로 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실험 기록을 읽으면 음식의 종류와 시간, 위액의 변화가 촘촘하게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에는 통증을 호소하거나 자리를 떠난 한 사람도 등장한다. 의사가 보고 싶어 했던 것은 위의 움직임이었지만, 그 위의 주인은 실험 바깥에서도 자기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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