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지도에서 북쪽이 위인 것은 지구에 물리적인 위쪽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대 프톨레마이오스의 북쪽 위 좌표 전통이 르네상스 유럽의 인쇄 지도·항해·지도책을 통해 널리 표준화됐기 때문이다. 동쪽이나 남쪽을 위로 놓은 지도도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쓰였으며, 북쪽 위는 여러 지도를 빠르게 비교하게 해 주는 강력한 관습이지 자연법칙이 아니다.
구형 지구를 우주에서 보면 ‘위’와 ‘아래’를 정할 절대 기준이 없다. 지구의 자전축은 두 극을 정의하고 천문학과 측량은 그중 하나를 북극이라 부르지만, 그 축을 종이의 세로 방향과 어떻게 맞출지는 별개의 선택이다. 지도를 180도 돌려 남쪽을 위에 놓아도 거리와 방향 관계는 그대로다. 중력이 가리키는 아래는 지구 중심 쪽이므로, 어느 반구도 행성 전체의 꼭대기에 있지 않다.
과거 지도는 오늘날의 도로 지도처럼 위치만 전달하지도 않았다. 세계의 종교적 질서, 통치자의 영역, 순례길, 항해 경로처럼 제작 목적에 따라 중요한 장소와 진행 방향을 위쪽이나 중심에 놓았다. 페이지 모양과 글을 읽는 방향, 지도를 탁자에 펼칠지 벽에 걸지도 배치에 영향을 줬다. 따라서 어느 방향이 위인지 묻기 전에 그 지도를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를 봐야 한다.
중세 유럽의 많은 마파문디는 동쪽을 위에 두었다. 미국 의회도서관이 소장한 15세기 세계지도도 예루살렘을 중심에, 동쪽을 위에 배치한다. 해가 뜨는 곳과 성서 속 낙원을 위쪽에 놓는 종교적·상징적 구성이었다. 영어 ‘orientation’의 뿌리인 라틴어 oriens가 동쪽과 떠오름을 뜻하는 것도 이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지도에서 아시아가 위에 보인다고 해서 제작자가 지구의 자전축을 몰랐다는 뜻은 아니다.
이슬람 지도 전통에서는 남쪽 위 배치가 흔한 사례로 남아 있다. 시칠리아 왕 루지에로 2세의 의뢰로 알 이드리시가 1154년에 완성한 지리서는 방대한 여행·문헌 정보를 70장의 구역 지도로 정리했고, 이를 합친 세계지도는 남쪽이 위다. 의회도서관 설명처럼 현대의 북쪽 위 눈에는 거꾸로 보이지만, 당시 체계 안에서는 일관된 배열이었다. 이것은 지도 방향이 지식의 정확성과 별개이며 문화마다 다른 기준을 택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북쪽 위 형식에도 오래된 뿌리가 있다.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는 위도를 남북으로, 경도를 동서로 배치한 좌표와 투영법을 설명했고 그의 지도 전통에서는 북쪽을 위, 동쪽을 오른쪽으로 두었다. 원본 지도 자체의 전승은 복잡하지만, 그의 《지리학》이 15세기 유럽에서 필사되고 활자로 인쇄되면서 격자에 장소를 옮기는 이 방식이 큰 영향력을 얻었다. 의회도서관은 이 책이 15~16세기 초 가장 인기 있는 인쇄 지도 출판물이었다고 설명한다.
나침반과 항해는 북쪽 위를 유용하게 만들었지만 자동으로 결정하지는 않았다. 자침은 남북축을 알려 줄 뿐 종이의 어느 끝을 위로 할지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북반구 유럽 항해자는 북극성으로 위도를 가늠하고 나침반 방위를 기록했으며, 북쪽을 기준으로 한 좌표 격자와 해도가 만나기 쉬웠다. 1569년 메르카토르의 북쪽 위 세계지도와 1570년 오르텔리우스의 균일한 지도책 같은 인쇄물이 반복·복제되면서 독자는 같은 방향의 지도를 기대하게 됐다. 메르카토르 한 사람이 북쪽 위를 발명한 것은 아니다.
표준화에는 실용적인 자기증폭 효과가 있다. 지도마다 위쪽이 달라지면 독자는 범례와 방위표를 확인한 뒤 머릿속에서 회전시켜야 하지만, 같은 관습을 쓰면 여러 지역·축척의 지도를 바로 이어 볼 수 있다. 학교, 군대, 행정 측량, 출판사와 국제 항해가 북쪽 위 자료를 축적할수록 다음 제작자도 그 형식을 따르는 비용이 낮아졌다. 유럽 제국과 인쇄 산업의 세계적 영향은 이 관습을 널리 퍼뜨렸지만, 북반구가 위라서 더 중요하거나 우월하다는 과학적 의미를 주지는 않는다.
오늘날에도 모든 지도가 북쪽 위인 것은 아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진행 방향을 위로 돌릴 수 있고, 건물 안내도는 사용자가 바라보는 쪽, 하천 지도는 흐름, 항공·해도는 임무에 맞는 방향을 택한다. 남쪽 위 세계지도는 익숙한 위계 감각을 흔들어 같은 지형을 새롭게 보게 하지만 좌표의 사실을 뒤집지는 않는다. 북쪽 화살표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도에서 위는 지구가 정해 준 곳이 아니라, 제작자와 독자가 같은 공간을 빠르게 읽기 위해 합의한 페이지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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