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파인먼은 금고를 열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연장을 가져오겠다며 자기 사무실에 다녀오곤 했다. 정작 확인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라 미리 알아둔 금고 번호였다. 돌아올 때 뒷주머니에 드라이버를 하나 꽂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문을 닫고 금고를 연 뒤, 사무실 안에서 잡지를 읽으며 평균 20분쯤 기다렸다. 너무 쉽게 열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충분히 시간을 보낸 다음에야 밖으로 나와 금고가 열렸다고 알렸다. 파인먼이 훗날 회고한 자신의 수법이었다.
이런 장난이 벌어진 곳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을 개발하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였다. 파인먼은 그곳에서 물리학 연구를 하면서 자물쇠를 공부했다. 중요한 연구 자료가 잠긴 서류함에 들어 있었고, 잠금장치가 있으면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었다.
잠금장치만큼 눈여겨본 것은 사람들의 습관이었다. 연구원들은 일하는 동안 서류함을 열어놓곤 했다. 파인먼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열린 서류함의 번호를 알아내고 기억해뒀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금고에서 서류를 꺼내달라는 부탁에 자신 있게 응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에게도 열 수 없는 금고는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보고서를 마무리하러 연구소에 돌아왔을 때였다. 토요일이라 필요한 문서를 꺼내줄 사람이 없었고, 도서관의 대형 금고는 그의 솜씨로도 열리지 않았다. 대신 동료 프레디 드호프만의 사무실에 같은 문서의 사본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도서관을 오가는 수고를 줄이려고 두 방의 서류함 아홉 개에 자료를 모아둔 동료였다.
파인먼은 드호프만이 번호로 골랐을 법한 수학 상수를 시험했다. 처음 짐작은 빗나갔지만, 다음 것이 맞았다. 서류함 하나가 열리자 나머지 여덟 개도 같은 번호로 열렸다. 원자폭탄의 이론과 계산을 담은 자료에 접근한 뒤, 그는 이 일로 더 유명해졌지만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원자폭탄 개발 사업의 또 다른 시설인 오크리지에서는 한 대령의 금고를 열어 보였다. 대령은 파인먼의 보고서를 그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파인먼은 대령이 보고서를 읽는 동안 열린 금고를 살펴봤다. 대령이 문을 닫은 뒤에는 직접 열어 보이며, 문이 열린 상태라면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할 때도 서류함을 잠가두라는 경고였다.
그런데 다음 방문 때 직원들은 파인먼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다. 대령이 그가 다녀간 사무실을 조사한 뒤, 해당 직원들에게 금고 번호를 바꾸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번호를 바꾸고 다시 외워야 했던 직원들은, 파인먼이 또 오면 같은 일을 반복할까 봐 그를 피했다.
그렇게 직원들은 파인먼을 경계하게 됐다. 일하는 동안 서류함을 열어두는 습관은 그대로였다고, 그는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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