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들여다보면

한글은 이미 쓰이던 문자를 조금씩 고쳐 만든 체계가 아니라, 한국어의 소리를 분석해 글자 모양과 운용 원리를 의도적으로 설계한 문자입니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1443년에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1446년에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자음과 모음이 어떤 생각에서 만들어졌는지 직접 설명합니다.

기본 자음 다섯 글자 ㄱ, ㄴ, ㅁ, ㅅ, ㅇ은 발음할 때의 기관 모양이나 조음 위치를 본떴습니다. 예를 들어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습을, ㅁ은 입의 모양을, ㅇ은 목구멍의 윤곽을 나타냅니다. 글자 모양에 소리가 만들어지는 장소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는 셈입니다.

나머지 자음 가운데 여러 글자는 이 기본형에 획을 더해 만들었습니다. ㄱ에 획을 더한 ㅋ처럼 관련된 소리는 닮은 꼴을 공유하면서 차이를 획으로 표시합니다. 모든 현대 자음을 하나의 규칙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형과 가획의 관계는 자음 체계가 무작위 기호 모음이 아니라 소리의 관계를 보여 주도록 짜였음을 드러냅니다.

모음의 출발점은 하늘을 뜻하는 점 ㆍ, 땅을 뜻하는 가로획 ㅡ, 사람을 뜻하는 세로획 ㅣ였습니다. 이 요소를 위·아래 또는 안·밖에 결합해 ㅗ, ㅜ, ㅏ, ㅓ 같은 글자를 만들고, 다시 점을 더하거나 모음을 합쳐 다른 소리를 나타냈습니다. 여기에는 발음 체계뿐 아니라 당시의 음양과 천지인 사상도 함께 반영됐습니다.

한글은 낱글자를 가로로만 이어 쓰지 않고 초성, 중성, 종성을 한 음절 단위의 네모꼴로 모아 씁니다. ‘한’이라면 ㅎ, ㅏ, ㄴ이 하나의 글자 덩어리를 이루지만 각 요소는 여전히 개별 소리를 나타냅니다. 덕분에 음소를 적는 알파벳적 성격과 음절 경계를 한눈에 보여 주는 배열이 함께 작동합니다.

처음의 훈민정음은 자음 열일곱 자와 모음 열한 자, 모두 스물여덟 자였습니다. 이후 쓰임이 줄어 사라진 글자가 있어 현대 한글의 기본 낱자는 자음 열네 자와 모음 열 자로 셉니다. 따라서 옛 문헌의 글자 수와 오늘날 교과서의 글자 수가 다른 것은 설계 원리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 사용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한글이 체계적이라는 사실이 한국어의 문법이나 맞춤법까지 저절로 단순하게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어는 문자보다 훨씬 넓은 규칙과 역사를 지닙니다. 한글 설계의 특별함은 소리가 나는 기관, 소리 사이의 관계, 당시의 철학, 음절 구조를 제한된 기본 요소 안에 연결하고 그 원리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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