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장이 정해졌는데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지금 다니는 곳에서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물러서지 않고 퇴직을 요구했다. 결국 허락 대신 내려온 것은 구금 명령이었다. 1717년, 서른두 살의 바흐가 직장을 옮기다 겪은 일이다.
바흐는 당시 바이마르 궁정에서 일했다. 1708년부터 오르간을 연주했고, 1714년에는 악장이 됐다. 새로운 교회 음악을 정기적으로 만들어 올리는 것도 그의 업무였다. 오늘날에는 공연장에 이름만 걸려도 관객을 모으는 작곡가지만, 그때는 군주에게 고용된 음악가였다. 좋은 곡을 쓰는 것과 마음대로 직장을 떠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쾨텐의 군주 레오폴트였다. 바흐가 옮겨 갈 자리는 궁정의 음악을 이끄는 카펠마이스터였다. 레오폴트는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할 만큼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궁정에는 솜씨 좋은 연주자들도 있었다. 바흐에게는 새 음악을 만들고 함께 연주할 만한 일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순서였다. 바흐는 바이마르에서 퇴직 허가를 받기 전에 쾨텐과 계약부터 했다. 이제 남은 일은 기존 고용주에게 놓아 달라고 하는 것이었지만, 바이마르의 공작 빌헬름 에른스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흐가 계속 요구하자 두 사람의 갈등은 단순히 퇴직 날짜를 정하는 수준을 넘어갔다.
궁정 비서가 남긴 기록은 짧고 냉정하다. 11월 6일 바흐를 가둔 이유는 완고한 태도로 퇴직을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음악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돈을 훔쳤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떠나겠다는 요구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인 일이 구금 사유였다. 그 기록 속 바흐는 후대의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라 말을 듣지 않는 궁정 직원이었다.
구금은 하루 이틀의 경고로 끝나지 않았다. 바흐가 풀려난 것은 12월 2일이었다. 거의 네 주가 흐른 뒤에야 자유를 얻었고, 동시에 퇴직도 허락받았다. 다만 공작이 노여워한다는 뜻이 함께 전달됐다. 오래 일한 음악가를 좋게 보내주는 작별은 아니었다.
그래도 바흐는 쾨텐으로 갈 수 있게 됐다. 그곳에서는 궁정 악단을 이끌며 기악곡을 썼고, 훗날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으로 불릴 작품들을 묶어 바치기도 했다. 여름에 계약한 자리로 옮겨 가기까지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마지막 한 달은 출근 준비를 하며 보낸 시간이 아니라 구금된 시간이었다.
몇 년 뒤 또 다른 자리를 얻을 때도 고용주의 퇴직 허가가 등장한다. 1723년 라이프치히가 음악가를 뽑을 때, 앞서 선택한 그라우프너가 기존 군주의 허락을 받지 못해 옮겨 오지 못했다. 결국 그 자리는 바흐에게 돌아갔다. 바이마르에서 자신을 붙잡았던 종류의 문제가, 이번에는 다른 후보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바흐는 라이프치히로 떠난 뒤에도 쾨텐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궁정의 경사를 위한 음악을 보내며 레오폴트와 인연을 유지했다. 바이마르에서처럼 마지막 인사를 감옥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편집 책임
팩토스브레인 편집부
이 기사는 팩토스브레인 편집부가 자료를 검토하고 편집 원칙에 따라 작성·검수했습니다. 오류 제보는 정정 정책에 따라 확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