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들여다보면

중세 말과 근세 초 유럽의 일부 성당·수도원·대학 도서관은 귀중한 책을 없애지 않고 공동으로 읽게 하려고 책에 쇠사슬을 달았다. 사슬은 독자를 벌주거나 금서를 봉인하는 장치가 아니라, 책을 가까운 열람대까지 옮겨 펼칠 수 있게 하면서 건물 밖으로 가져가지는 못하게 한 보안과 접근의 절충안이었다. 모든 책과 모든 도서관이 이 방식을 쓴 것은 아니지만, 영국의 대학과 성당 도서관에는 그 구조와 장부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인쇄가 널리 퍼지기 전 책 한 권에는 양피지나 종이, 필사와 채색, 교정, 제본에 많은 재료와 숙련 노동이 들었다. 법률서·신학서·의학서는 공동체의 교육과 예배에 필요하면서도 사람이 들고 나갈 수 있는 크기의 재산이었다. 옥스퍼드의 베일리얼 칼리지 기록은 중세 책을 돈을 빌릴 때 맡길 수 있는 이동 가능한 자산으로 설명한다. 문을 잠근 방이나 상자에 보관하면 도난은 줄일 수 있지만, 여러 학자가 필요한 순간에 곧바로 참고하기 어려워진다.

쇠사슬 도서관은 이 충돌을 가구 설계로 풀었다. 헤리퍼드 대성당의 보존 사례에서는 짧은 쇠사슬 한쪽을 책 앞표지의 위쪽 가장자리에 고정하고, 다른 쪽 끝의 고리를 선반 아래쪽을 가로지르는 긴 철제 막대에 끼웠다. 막대는 잠금장치로 고정되어 허가 없이 고리를 빼낼 수 없었다. 사슬 길이는 책을 선반에서 꺼내 바로 앞의 책상이나 열람대에 놓고 펼치기에는 충분하지만, 방을 가로질러 가지고 나갈 만큼 길지는 않았다.

책등이 아니라 종이의 앞면 가장자리가 독자를 향하도록 꽂힌 모습도 이 장치의 결과다. 사슬이 앞표지에 달린 책을 오늘날처럼 책등이 바깥을 향하게 두면, 꺼내서 읽는 방향으로 돌릴 때 사슬이 책 주위를 감거나 이웃 사슬과 꼬일 수 있다. 앞면 가장자리를 바깥으로 두면 책을 그대로 들어 인접한 경사진 열람대에 놓을 수 있었다. 제목은 책등 대신 앞면 가장자리나 표지에 표시하기도 했으므로, 현대 도서관에 익숙한 눈에는 책이 거꾸로 꽂힌 것처럼 보인다.

초기의 배치는 책과 책상이 거의 한 몸인 열람 환경이었다. 베일리얼에는 1380년대 쇠사슬 책을 둔 방이 있었고, 15세기에는 창 사이에 경사진 독서대를 세운 형태가 기록된다. 오리엘 칼리지에서도 1409년 쇠사슬 도서관 언급과 1449년 새 도서관 건립 기록이 남아 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창 가까이 학자가 앉고, 필요한 책을 막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펼치는 방식이었다. 뒤에는 수직 선반과 책상이 결합된 칸막이형 서가가 늘었지만 ‘읽을 수 있으나 가져갈 수 없음’이라는 원리는 같았다.

사슬이 있었다고 대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리엘의 기록처럼 서가에 고정한 열람용 장서와 보증을 받고 빌려주는 장서가 함께 존재했다. 어떤 책을 묶을지는 가격만이 아니라 수업과 예배에서 자주 참고해야 하는지, 그곳에 반드시 한 부를 남겨야 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즉 사슬은 모든 독자를 잠재적 도둑으로 몰아세운 단일 규칙이 아니라, 제한된 복본을 공동체 안에서 계속 이용 가능하게 만드는 장서 관리의 한 층이었다.

인쇄술이 등장하자 쇠사슬이 곧 사라졌다는 설명도 너무 빠르다. 인쇄는 같은 텍스트의 복본을 늘리고 권당 제작비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했지만, 큰 학술서와 기증 장서는 여전히 값졌고 기존 가구와 관리 관행도 남았다. 헤리퍼드의 현재 쇠사슬 도서관은 주로 17세기에 마련된 배치를 보존하며, 그곳에서는 이 방식이 1841년까지 이어졌다. 베일리얼은 1677년에도 특별한 책 사슬을 주문했고 1760년대 말 장부에도 사슬 작업이 나타난다. 중세에 시작된 기술이 인쇄 시대 깊숙이 살아남은 셈이다.

쇠사슬 도서관은 한 가지 표준 설계로 유럽 전체에 복제된 것도 아니다. 책이 열람대 위에 눕는 방식과 선반에 서는 방식, 사슬이 붙는 위치와 길이, 대출 규칙은 장소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오늘날 완전한 형태로 남은 헤리퍼드의 시설은 특히 귀중하지만, 그 모습이 모든 중세 도서관의 평균이라고 볼 수는 없다. 보존된 가구, 표지의 고리 자국, 장부의 사슬 구입 기록을 함께 봐야 한 지역에서 실제로 어떻게 운영됐는지 알 수 있다.

책 사슬은 지식을 가둔 야만적인 옛 풍습이라는 첫인상과 달리, 희소한 정보 자원을 더 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이용하게 한 장치였다. 완전히 잠가 두는 상자보다 접근성이 높고, 자유 대출보다 한 부뿐인 기준 문헌을 남겨 둘 가능성이 컸다. 인쇄와 장서 수가 늘고 목록·감독·대출 제도가 달라지면서 그 절충의 필요가 줄자 사슬도 풀렸다. 앞면을 내보인 책과 짧은 쇠사슬은 당시 도서관이 소유권만 지킨 것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 안에서 독서 가능성까지 설계했다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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