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들여다보면
기름과 물은 세게 저으면 잠시 섞인 듯 보여도, 두 액체가 맞닿는 넓은 경계면을 유지하는 상태보다 서로 모여 경계면을 줄이는 상태가 더 안정적이어서 다시 갈라진다. 휘젓는 힘은 기름을 작은 방울로 쪼개 물속에 흩뜨릴 수 있지만, 유화제처럼 방울의 재결합을 막는 성분이 없으면 그 방울들은 충돌하고 합쳐져 결국 별도의 층을 만든다.
출발점은 분자의 성질이다. 물 분자는 산소 쪽이 약한 음전하, 수소 쪽이 약한 양전하를 띠는 극성 분자이며, 이 부분 전하 때문에 이웃한 물 분자끼리 수소 결합이라는 강한 끌림을 만든다. 여기서 극성이란 분자 전체가 전기를 띤다는 뜻이 아니라, 전자가 고르게 분포하지 않아 한 분자 안에 전하가 약간 치우쳐 있다는 뜻이다. 반면 식용유를 이루는 중성지방은 글리세롤에 세 지방산이 붙은 구조이고, 긴 탄화수소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해 전체적으로 비극성에 가깝다. 물과 기름 사이의 끌림은 물 분자들이 서로 맺던 상호작용을 대신할 만큼 유리하지 않으므로, 두 액체는 분자 수준에서 고르게 섞이지 않는다.
이를 ‘기름이 물을 밀어낸다’고 말하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기름과 물 사이에 특별한 반발력이 작동한다기보다, 물이 기름과 넓게 접촉할 때 끊기거나 재배열되어야 하는 물-물 상호작용의 대가가 크다. 그래서 기름 분자들이 한곳에 모이면 물과 맞닿는 전체 면적이 작아지고 계의 자유에너지도 낮아진다. 화학에서 말하는 소수성 효과는 바로 이처럼 물속의 비극성 물질이 서로 뭉치는 경향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흔들거나 휘저을 때 뿌옇게 섞이는 장면은 무엇일까. 젓는 동작이 기름층에 기계적 일을 가해 수많은 작은 방울로 잘게 나누고 물속에 퍼뜨린 ‘유화액’을 잠시 만든 것이다. 두 액체가 만나는 얇은 경계를 계면이라고 하는데, 작은 방울의 총계면은 같은 양의 기름이 한 덩어리일 때보다 훨씬 넓다. 예를 들어 큰 방울 하나를 같은 부피의 더 작은 방울들로 쪼개면 기름의 양은 그대로여도 물과 접촉하는 면은 크게 늘어난다. 따라서 이 상태를 만들려면 에너지가 들어간다. 방울들이 가시광선을 여러 방향으로 산란시키기 때문에 투명했던 액체가 탁하거나 크림빛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기름 분자가 물에 녹았다는 뜻이 아니다.
젓기를 멈추면 작은 방울들이 흐름과 열운동 속에서 서로 만난다. 두 방울 사이에 낀 얇은 물막이 빠져나가고 경계막이 끊어지면 방울은 하나로 합쳐지는데, 이를 합체라고 한다. 여러 작은 구는 같은 부피의 큰 구 하나보다 표면적이 크기 때문에 합체할수록 기름과 물의 경계는 줄어든다. 동시에 보통의 식용유는 물보다 밀도가 낮아 방울이 위로 떠오르는 크리밍이 일어나며, 위에 모인 방울들이 계속 합쳐져 눈에 보이는 기름층을 회복한다.
마요네즈가 쉽게 두 층으로 갈라지지 않는 것은 제3의 성분이 이 과정을 늦추기 때문이다. 난황의 인지질이나 겨자와 식품 속 단백질 같은 유화제에는 물과 잘 어울리는 부분과 기름과 잘 어울리는 부분이 함께 있다. 이 분자들이 기름방울 표면에 자리 잡으면 기름-물 계면의 성질을 바꾸고, 가까워진 방울 사이에 물리적 또는 전기적 장벽을 만들어 합체를 어렵게 한다. 세게 섞어 방울을 작게 만드는 일과 유화제로 새 표면을 보호하는 일이 함께 이루어져야 비교적 오래가는 유화액이 된다.
그래도 유화액이 영원히 안정한 것은 아니다. 방울 크기와 분포, 유화제의 종류와 양, 액체의 점도, 온도, 산도와 소금 농도에 따라 방울이 떠오르거나 뭉치고 합쳐지는 속도가 달라진다. 위로 떠오른 방울이 아직 각각의 경계를 유지한다면 크리밍일 뿐이고, 경계가 터져 하나가 되어야 합체다. 그래서 위아래 농도 차가 생긴 유화액도 가볍게 흔들면 돌아올 수 있지만, 완전히 합체해 큰 기름층이 된 뒤에는 다시 잘게 쪼개는 힘이 더 필요하다. 드레싱을 다시 흔들어야 하는 까닭과 마요네즈 제조에서 기름을 천천히 넣으며 계속 휘젓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또한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말은 상호 용해도가 정확히 0이라는 뜻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비율에서는 매우 낮아 두 층을 이룬다는 뜻이다.
결국 물과 기름을 가르는 것은 단순히 기름이 가벼워 위로 뜬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밀도 차이는 어느 층이 위에 놓일지를 정하지만, 애초에 두 액체가 별개의 상으로 남고 저은 뒤 다시 큰 영역으로 모이는 까닭은 분자 간 상호작용과 계면을 줄이려는 경향에 있다. 휘젓기는 잠시 많은 경계를 만들어 내고, 유화제는 그 경계를 오래 지키며, 아무 보호도 없을 때 액체는 다시 경계가 가장 적은 두 층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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