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들여다보면

파인애플은 식탁에서는 커다란 과일 한 개지만, 식물학에서는 여러 꽃이 함께 만든 여러열매입니다. 식물의 꼭대기에서 꽃차례가 올라오면 한 꽃만 피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개에서 200개가 넘는 꽃이 빽빽하게 자리합니다. 각 꽃은 작은 열매가 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며 이 열매들과 꽃대의 조직이 자라 서로 맞닿아 하나의 단단한 덩어리로 융합합니다. 우리가 껍질을 벗겨 자르는 파인애플은 그래서 ‘큰 열매 하나’보다 꽃차례 전체의 완성된 모습에 가깝습니다.

여러열매라는 말은 단순과나 집합과와 구별하기 위해 씁니다. 복숭아처럼 한 꽃의 한 씨방에서 자란 것은 단순과입니다. 산딸기처럼 한 송이 꽃 안에 여러 씨방이 있어 작은 열매들이 한데 모인 것은 집합과입니다. 반면 파인애플은 서로 다른 여러 꽃에서 생긴 열매가 붙은 경우입니다. 출발점이 한 꽃 안의 여러 부분인지, 한 꽃차례의 여러 꽃인지가 구분의 핵심입니다. 겉으로 한 덩어리인지 아닌지만으로는 정확히 나눌 수 없습니다.

파인애플 껍질의 육각형 또는 마름모꼴 ‘눈’은 그 출발점을 남겨 둔 표지입니다. 눈 하나는 대체로 한 꽃과 그 꽃에서 만들어진 작은 열매가 있던 자리와 대응합니다. 표면의 무늬가 일정한 나선으로 이어지는 것도 꽃들이 줄기 둘레에 촘촘히 배열된 흔적입니다. 과일을 먹기 전에 표면을 천천히 보면, 장식처럼 보이던 칸들이 사실은 여러 꽃이 함께 자란 지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융합에는 각각의 씨방만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플로리다대학교의 재배 안내가 설명하듯 성숙한 파인애플은 융합한 씨방, 꽃받침과 포의 밑부분, 중앙 심의 바깥 조직을 함께 포함합니다. 그래서 세로로 자르면 가운데에 상대적으로 단단한 심이 길게 이어지고, 작은 조각을 라즈베리 알갱이처럼 하나씩 떼어 내기는 어렵습니다. 파인애플의 과육은 많은 작은 열매가 단순히 옆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꽃차례의 축을 중심으로 하나의 구조가 된 결과입니다.

꼭대기의 잎 무더기인 왕관도 이 과정을 보여 줍니다. 꽃차례의 축은 열매 위에서 다시 영양생장성 잎을 내어 왕관을 만들고, 이 부분을 잘라 심으면 새 식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상업 재배에서 씨앗보다 왕관이나 곁순 같은 영양번식 재료를 흔히 쓰는 이유도 원하는 품종의 특징을 비교적 일정하게 이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왕관은 열매의 ‘꼭지 장식’이 아니라, 열매를 낳은 식물의 줄기가 계속 남긴 부분입니다.

파인애플에 씨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꽃이 열매를 만드는 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재배 품종은 대체로 다른 품종의 꽃가루를 받아야 씨가 잘 생기며, 같은 품종끼리는 자가불화합성 때문에 씨가 잘 맺히지 않습니다. 과육이 발달하는 것과 씨가 만들어지는 일은 완전히 같은 조건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씨 없는 파인애플도 여러 꽃이 차례로 자라 융합한 여러열매라는 분류를 바꾸지 않습니다.

‘파인애플은 열매 하나인가, 여러 개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어느 기준을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하나를 사고 식물학에서는 여러 꽃의 산물이라고 부릅니다. 두 표현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표면의 눈, 가운데 심, 꼭대기 왕관은 모두 같은 발달 과정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보여 줍니다. 달콤한 과육 한 덩어리 안에는 한때 나란히 피었던 많은 꽃의 흔적이 압축되어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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